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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회칼럼(권순혁목사)

September 20, 2026 . 아름다운교회 울타리 너머에도 흐르는 하나님의 은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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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아름다운교회
댓글 0건 조회 1회 작성일 26-10-11 15: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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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 안에서 우리는 '은혜'라는 말을 자주 하지만, 그 은혜를 지나치게 좁은 통로로만 이해할 때가 많습니다. 십자가에서 완성된 구원의 은총, 곧 특별은총만이 하나님의 유일한 활동이라고 생각하면 신앙은 어느새 울타리가 되고, 교회는 세상과 담을 쌓은 섬이 될 수 있습니다. 기독교가 배타적인 종교로 비치는 이유는 복음의 내용 때문이라기보다, 그 복음을 주신 하나님을 너무 작게 묵상해 온 데 있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듭니다.

성경이 증언하는 하나님은 구속의 하나님이기 전에 창조의 하나님이시며, 구원하시는 분이기 전에 만물을 붙드시는 분이십니다. 시편 기자는 하나님의 긍휼이 그분이 지으신 모든 것 위에 있다고 노래했고(시 145:9), 예수님은 아버지께서 해를 악인과 선인에게 비추시고 비를 의로운 자와 불의한 자에게 내리신다고 말씀하셨습니다(마 5:45). 바울은 아테네에서 하나님이 만민에게 생명과 호흡과 모든 것을 친히 주시는 분이라고 선포했습니다(행 17:25). 복음을 들어 본 적 없는 이의 식탁에 오른 밥, 신앙 없는 의사의 손에서 회복된 생명, 그리스도를 모르는 예술가가 빚어낸 아름다움도 모두 하나님의 손길 안에 있습니다. 개혁신학에서는 이것을 일반은총이라고 부릅니다. 하나님은 이방 왕 고레스를 '기름 부은 자'라 부르며 쓰셨고(사 45:1), 살인자 가인에게조차 보호의 표를 주셨습니다(창 4:15).

물론 일반은총이 곧 구원은 아니다. 해와 비를 누리는 것과 그리스도 안에서 새 생명을 얻는 것은 다릅니다. 그러나 두 은총은 서로 다투지 않습니다. 특별은총은 일반은총이 떠받치는 무대 위에서 펼쳐지며, 둘은 한 하나님의 한 경륜 안에서 이어집니다. 칼빈이 이교 저술가들의 진리조차 성령의 선물로 인정했던 것도, 카이퍼가 만물 가운데 그리스도께서 "내 것"이라 하지 않으실 영역은 단 한 뼘도 없다고 고백했던 것도 이 때문인 것이죠.

일반은총을 묵상하는 그리스도인은 다르게 삽니다. 신앙이 다른 이웃의 성실함과 친절 앞에서 그것을 '아직 구원받지 못한 사람의 착함'쯤으로 깎아내리지 않고, 하나님이 그에게도 허락하신 선물로 알아보고 감사합니다. 다른 신념을 가진 이와의 대화에서 방어하기보다 배우며, 복음을 전하되 정복하려 들지 않습니다. 자신이 서 있는 자리가 공로가 아니라 은총임을 알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이미 일하고 계신 세상 속으로 초대받았음을 아는 사람은 겸손하면서도 담대합니다.

교회의 문이 좁아 보인다면, 복음이 좁아서가 아니라 우리의 하나님 이해가 좁아서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교회 안에서만 일하시는 분이 아니라, 교회를 세우신 그 손으로 온 세상을 다스리시는 분입니다. 오늘 아침 우리를 비춘 햇빛은 모든 사람 위에 똑같이 내렸음을 좀 더 깊이 묵상해 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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