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회칼럼(권순혁목사) 4 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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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회칼럼(권순혁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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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름다운교회 Jun 02.2024 아름다운교회의 새로운 도약, VBS
    지난 주 우리 아름다운교회에서 Vacation Bible School이 열렸습니다. 앤드류 목사님을 중심으로 모든 교사들이 하나되어 기쁨으로 아이들을 섬겼습니다. 교사들은 한 달 전부터 토요일마다 모여서 함께 기도하며 이 VBS를 준비하였습니다. 그리고 각자에게 맡겨진 성경공부, 크래프트, 게임, 그리고 간식 만들기를 성실하게 준비해 주셨습니다. 여기에 더해 보조교사로 많은 분들이 함께 해주셔서 준비된 스테이션이 원활하게 진행되도록 도움을 주셨습니다. 주방도 VBS가 열리기 2주 전부터 여러 분들이 자원해 주셔서 아이들이 맛있는 점심을 먹을 수 있도록 섬겨주셨습니다. 어떤 한 집사님은 주방을 섬겨주시기 위해 평소 일하는 날짜도 조정하셔서 3일 동안 휴가를 내시기도 했습니다. 그 외에도 일을 조정하여 하루 이틀이라도 나와서 섬겨 주신 분들, 도저히 시간이 안 돼서 잠깐 들러서 맛있는 간식을 주고 가신 분들, 그리고 이 행사를 위해 물질적으로 지원해 주신 여러 분들이 계셨습니다. 저는 이번 VBS가 진행되는 것을 보면서 함께 하는 것이 얼마나 큰 힘을 지녔는지를 새삼 느끼게 되었습니다. 아니 눈으로 똑똑히 보았습니다. 혼자 서는 할 수 없을 것 같은 일들이 함께 하니 기적 같은 일들이 일어났습니다. 첫 번째 기적은 지치지 않는 힘이 함께 할 때 솟아 나왔다는 것입니다. 이번 VBS를 섬기시는 모든 분들의 얼굴에는 기쁨이 흘러 넘쳤습니다. 3일 동안 아이들을 상대로 한다는 것이 육신적으로는 지칠 수 있는 일이었음에도 전혀 힘든 기색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서로가 서로를 격려하며 세워주며 인정해 주는 모습들을 많이 보았습니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무슨 일이든 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이것을 함께 하는 기적이라고 부르고 싶습니다. 두 번째 함께 하는 기적은 풍성함을 함께 누렸다는 것입니다. 준비 과정에서부터 혼자 계획하기보다 함께 아이디어를 내고, 함께 준비해 나가면서 VBS가 더욱 풍성하게 되는 것을 보았습니다. 게임, 크래프트, 간식 만들기, 성경공부, 어느 것 하나 혼자 힘으로 했다면 빈약해 보였을 것입니다. 서로 생각이 다르고, 접근하는 방식이 다를 수도 있었겠지만 그런 것들이 하나로 모여졌을 때 각 스테이션마다 한치의 부족함 없이 풍성하게 진행되는 것을 볼 수 있었습니다. 마지막 함께 하는 기적은 다양한 배경과 인종의 아이들을 수용할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이번 VBS에는 지금 우리 교회를 다니고 있는 아이들 뿐만 아니라 외부에서도 많은 아이들이 등록했습니다. 심지어 한국어를 전혀 하지 못하는 아이들도 그 안에는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함께 하는 분위기 속에서 다양한 배경의 아이들이 쉽게 적응하고 함께 웃고 즐길 수 있었습니다. 저는 이 마지막 기적을 보면서 우리 교회의 미래를 기대해 볼 수 있었습니다. 우리가 함께 할 때 우리 교회는 다양한 배경과 인종의 사람들을 품을 수 있는 교회가 될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을 보게 된 것입니다. 이번 VBS는 우리 교회가 새롭게 도약하는 계기가 되었다고 저는 확신합니다. 모두가 힘을 모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뜻에 함께 한다면 우리 교회는 어떤 일이든 해낼 수 있을 것입니다. 오직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Soli Deo Glor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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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름다운교회 May 26.2024 생명의 길과 사망의 길
    저희 집 첫째 아이가 사춘기를 지나고 있습니다. 심지어 중2입니다. 무서운 나이죠. 북한군이 중2들이 무서워서 남한을 못 쳐들어온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무시무시한 포스를 뿜어내는 나이입니다. 하지만 알고보면 사춘기는 축복의 시간입니다. 자기가 누구인지를 찾아가는 과정이기 때문입니다. 이 시간을 잘 보내야만 이들은 세상에서 흔들림없이 살아갈 수 있습니다. 이 시간은 부모에게 도 축복의 시간입니다. 기독교 작가 C. S. 루이스가 자녀의 사춘기 기간은 “부모 를 영적으로 깨우기 위한 하나님의 선물”이라고 말한 것은 이를 두고 한 이야기 일 것입니다. 자녀와의 부딪힘 속에서 하나님 앞에 나아가 기도할 수밖에 없는 시간을 부모가 보내야만 하는 것이죠. 그러기에 부모에게 축복인 것입니다. 그렇다면 사춘기를 지나는 아이들이 무서운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것은 누구의 이야기도 들으려 하지 않는 것 때문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저희 집 아이도 이제 부모의 말을 잘 들으려 하지 않습니다. 특히 엄마의 말은 대놓고 무시를 합니다. 하지만 말을 안 할 수는 없습니다. 왜냐하면 분명히 아직 덜 성숙한 부분이 보이기 때문입니다. 자신은 다 옳은 것처럼 이야기하지만 고쳐야 하고, 더 자라가야 할 부분이 부모 눈에는 보이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이야기 를 해 줍니다. 이렇게 이야기할 때 부모의 마음은 “네, 잘못 했습니다. 제가 앞으로 이런 부분은 고치도록 하겠습니다.”라는 반응을 기대합니다. 하지만 부모 의 기대와는 달리 이런 반응이 아닐 때가 더 많습니다. 자신이 옳다라는 생각을 버리지 못해서이겠지요. 그럼 어떻게 합니까? 넘어져 보고, 실패하는 걸 경험하 면서 스스로 느끼길 바라며 기도하고 기다리는 것이 또 부모의 마음입니다. 아버지 하나님의 마음이 이런 마음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아직 더 자라가야 할 부분이 있는 우리에게 말씀으로 계속 찾아오십니다. 아버지이신 하나님이 보실 때 아직 덜 성숙한 부분이 너무나도 잘 보이시기 때문입니다. 나는 옳다라 고 이야기하지만 고쳐야 하고, 더 자라가야 할 부분이 너무나도 잘 보여서 그렇 게 하시는 것입니다. 그럴 때마다 하나님 아버지는 “네, 잘못 했습니다. 제가 앞으로 이런 부분 고쳐 나가겠습니다.”라는 반응을 기대하실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보통 그렇게 잘 하지 않습니다. 내가 여전히 옳다라고 생각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주변에서 너가 맞다고 이야기해 주고 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그것을 지지하고 옳다라고 이야기해 주기 때문일 수도 있습니다.그런 점에서 아합과 다윗의 반응은 정확히 대비되어 하나님 아버지의 말씀 앞에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를 우리에게 가르쳐 줍니다. 아합과 다윗은 둘 다 잘못을 했습니다. 그때 둘 모두에게 선지자가 찾아와 비유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합니다. 그리고는 “당신이 바로 하나님 앞에 범죄한 그 사람이다.”라는 지적을 받았습니다. 둘 다 왕이었습니다. 잘못을 지적당할 때 받아들이기 힘든 위치에 있었습니다. 여기까지 아합이나 다윗은 똑같은 상황이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부 터 둘은 다른 길을 갑니다. 아합은 회개하지 않았고, 다윗은 하나님 앞에 통회 하고 자복했습니다. 결국 아합은 망하는 인생을, 다윗은 축복의 인생을 살아가게 됩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의 말씀 앞에 어떻게 반응하시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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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름다운교회 May 19.2024 어느 때까지 둘 사이에서 머뭇머뭇 하려느냐
    우리는 신앙생활을 하다보면 늘 한결같이 하나님만을 바라보고, 하나님만을 신뢰해야 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렇게 하지 못한다는 것을 느낄 때 좌절과 회의에 빠지곤 합니다. 그런데 오히려 우리는 조금 솔직해질 필요가 있습니다. 오히려 이것이 진짜 우리의 모습이라는 것을 인정할 필요가 있다는 것입니다. 어떤 남편이 “저는 한결같이 아내만 바라보고, 아내만 생각하고, 아내만을 위해서 삽니다.”라고 이야기한다면 그것을 듣는 사람의 십중팔구는 피식 웃음을 지을 겁니다. 보통의 남자들이 실제로 그렇게 하지 않으면서 말로만 그렇게 말할 때가 많기 때문입니다. 또 실제로 그렇게 한다 할지라도 속마음은 어떤지 아무도 알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렇게 이야기하는 남편을 보면 오히려 철이 없구나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하나님에 대한 우리의 마음이 그렇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늘 머뭇머뭇 하는 모습이 우리 안에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고백할 수 있다면 오히려 솔직한 사람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하지만 언제까지나 머뭇거릴 수만은 없기에 우리에게 해결책이 필요합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왜 머뭇거리게 되는 것일까요? 왜 한편으로 마음을 온전히 주지 못하고 왔다갔다 하게 되는 것일까요? 그 이유에 대해 열왕기상 18장을 읽고 묵상하면서 깨닫게 되었습니다. 엘리야는 바알과 아세라 선지자 850명을 갈멜산으로 오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그 자리에는 이스라엘 백성들도 함께 모여 있습니다. 이제 엄청난 대결이 눈앞에서 펼쳐질 것입니다. 이 대결을 앞에 두고 엘리야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외쳤습니다. “너희는 어느 때까지 둘 사이에서 머뭇머뭇 하려느냐” 하나님이냐, 바알이냐? 둘 중 하나를 선택하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백성들의 반응이 놀랍습니다. 왜냐하면 그들 중 아무도 이 물음 앞에 반응을 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의미하는 바가 무엇일까요? 백성들은 이 대결의 결과를 보고 결정하겠다는 것 아닐까요? 바알이 이기면 바알을 따르고, 하나님이 이기면 하나님을 따르겠다는 것 아닐까요? 그런데 다행히도(?) 하나님이 이 대결에서 이겼습니다. 그렇다면 이들이 정말 하나님을 따랐을까요? 만약 그들이 하나님을 참 신으로 생각했다면 이 대결이 있기 전에 그들은 하나님을 따르겠다고 결단했어야 합니다. 그런데 그들은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결과를 보고 따르겠다고 생각하는 것은 그들은 자기들이 생각하는 신을 따르겠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들에게 있어 바알도 그들이 만들어 낸 우상이었고, 하나님도 그들이 생각한대로만 움직여야 하는 하나님일 뿐이었던 것입니다. 이것은 결국 인간이 신이라는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인간이 신이 되어 자신의 필요에 따라 바알을, 그리고 아세라를, 심지어는 하나님도 만들어 냅니다. 최근 이러한 현상은 더욱 급격화되어 자기 생각, 자기 감정, 자기 경험을 따라 생각하고 판단하고 행동하는 크리스챤들이 많아지고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그러면서 우리는 하나님이냐 나 자신이냐에서 갈팡질팡하며 머뭇머뭇거리고 있습니다. 그런 우리에게 하나님께서 찾아오셔서 말씀하십니다. “너희는 어느 때까지 둘 사이에서 머뭇머뭇 하려느냐” 올바른 선택을 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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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름다운교회 May 12.2024 피는 물보다 진하다
    우리는 오늘 하나님이 만드신 대자연에서 야외예배로 모입니다. 이 일을 위해 수고하시고 헌신하시는 분들을 보면서 제 마음이 얼마나 흐뭇했는지 모릅니다. 이건 말로 어떻게 설명할 수 없는 감정입니다. 각자가 맡은 분야에서 자발적으로 헌신하고 희생하시는 모습이 하나로 어우러지는 모습을 보는 것이 이렇게 기쁜 일일 수 없습니다. 야외예배를 위해 헌신하고 수고하신 모든 분들께 깊은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미국 사회에서 이민자로 살아간다는 것이 그리 녹록치가 않습니다. 고국을 떠나 언어도 잘 통하지 않는 이곳에서 손짓 발짓 해가며 살기 위해 아등바등 하는 모습은 애처롭기 그지 없습니다. 지난 주 저는 어떤 한 남자 분으로부터 전화 한통을 받았습니다. 한국에서는 이름만 들어도 아는 서울의 한 유명한 대학을 나오신 분이었습니다. 인생이 순탄대로가 될 것만 같았는데 미국에 와서 그것도 라스베가스에서 지금 왜 살고 있는지 모르겠다고 하셨습니다. 사는 것이 너무나 괴롭고 고통스러워서 빨리 이세상을 떠나고 싶어 하셨습니다. 이 전화를 받았던 때가 주일 예배를 막 앞두고 있었던 때였는데 혹여나 이 분이 잘못된 선택을 하실까 조마조마하며 전화를 끊을 수가 없었습니다. 이분과 전화를 하는 내내 제게 느껴졌던 것은 ‘이민자의 삶이라는 것이 정말 힘든 것이구나’ 하는 것이었습니다. 조금만 더 깊게 생각해 보면 이민자의 삶만 그런 것이 아니라 모든 인생이 그렇습니다. 나그네의 삶을 살고 있기 때문이겠지요. 고국을 떠난 이민자의 삶처럼 우리 인생은 하늘의 영원한 집을 떠나 이 땅에 잠시 살고 있을 뿐입니다. 그런 우리에게 서로 의지하며, 서로 도우며, 서로 위로하며 살라고 주신 것이 가정입니다. 남편과 아내, 부모와 자녀, 친척들, 이 모두가 이 땅에서 천국을 경험하며 살라고 주신 하나님의 선물이라는 것이지요. 그런데 어찌 된 것이 오히려 가족이 원수가 되어 살아가는 사람이 적지 않습니다. 한 예로 제가 “천국에 가면 지금의 남편과 아내는 더 이상의 부부가 아니라 우리는 그보다 더 좋은 관계들을 하나님과 사람들과 맺으며 살아갈 것입니다”라고 했더니 그 이야기를 듣던 한 여집사님이 “할렐루야”를 외쳤습니다. 가정이 천국을 경험하는 장소가 아닌 고통을 주는 장소처럼 생각하고 있는 것 같아 마음이 참 아팠습니다. 그런 것을 보면 가정이 천국을 경험하는 곳이어야 하는데 가정도 무언가 한계가 있는 것처럼 느껴집니다. 가정에서 우리는 왜 천국을 경험하지 못할까요? 예수님이 가정의 중심에 있지 않으시기 때문입니다. 천국은 예수님만이 가져다 주실 수 있습니다. 남편과 아내, 부모와 자녀가 예수님을 중심으로 모신 삶을 살 때에만 우리는 죽어서만 가는 천국이 아닌 이 땅에서의 천국을 경험하며 살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 피는 물보다 진합니다. 예수님의 피로 맺어진 가족이 진짜 가족처럼 느껴지는 이유가 그것 때문입니다. 그래서 어떤 때는 교회 가족이 더 끈끈하고 사랑스럽게 느껴지는 이유가 그것 때문입니다. 예수님을 중심으로 모신 곳이 교회이기 때문입니다. 야외예배를 드리면서 교회 가족의 그 진정한 형제애를 느끼고 나눌 수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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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름다운교회 May 05.2024 고난은 하나님께 더욱 가까이 나아가게 합니다
       우리 인생에 고난은 피할 수 없는 통과의례와도 같은 것입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고난은 피할 수 있다면 피하고 싶은 것이고, 아예 찾아오지 말았으면 하는 그런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기도할 때도 고난이 내 인생에, 우리 가정에 찾아오지 않기를 기도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 고난의 문제가 그렇게 간단하게 생각할 문제가 아닌 듯 합니다. 왜냐하면 아무리 애쓰고 노력해도 고난은 어김 없이 우리를 찾아와 문을 두드리기 때문입니다. 어떤 때는 한 고비를 넘겼다 싶을 때쯤 또 다른 고비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 것만 같습니다.    예전에 팀 켈러 목사님의 ‘고통에 답하다’라는 책을 읽으면서 고난의 문제에 대해 깊이 고민해 본 적이 있습니다. 그 책에서의 전제 또한 ‘고난은 인간에게 피할 수 없는 것이다’였습니다. 그래서 “인간은 종교를 통해 이 고난의 문제에 대한 답을 얻고자 노력해 왔다”라고 그는 주장합니다. 윤회를 믿는 종교에서는 고난에 대해 불평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우리가 겪고 있는 고통은 전생에 우리 가 잘못했기 때문입니다. 불교에서는 고난은 실제가 아니기 때문에 우리로부터 분리시키라고 가르칩니다. 이슬람은 이 세상을 선과 악의 대결로 보면서 고난을 주는 존재를 악한 세력으로 단정하고 그 고난을 힘으로 제압하는 것이 자신들 의 사명이라고 가르칩니다. 그래서 테러를 일삼고 테러리스트들을 순교자들로 신격화하는 것이죠. 이런 것들을 볼 때 그 어떤 종교도 고난의 문제에 대한 올 바른 대답을 주지 못합니다.    또한 세속주의가 고난을 바라보는 관점에 대해서 그는 “일단 세속적인 관점에 서 볼 때, 우리가 보는 세상이 전부이기 때문에 하나님, 내세, 영혼에 대한 관심이 없다. 그래서 이 세상을 살아가는 근거로 돈, 지위, 아름다움이 중요하다. 그러나 고난은 이러한 것을 빼앗아간다. 그렇기에 세속적인 사람들에게 고난은 그 들의 삶의 의미를 빼앗아가는 것에 불과하다. 세속적인 문화는 고난의 문제에 대해 여러분에 대해 어떤 답도 줄 수 없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렇다면 고난에 대한 올바른 해석은 무엇일까요? 켈러 목사님은 “기독교에서 는 불의한 고난이 있을 수 있으며, 때로는 의로운 사람에게도 고난이 있을 수 있다. 또 우리가 당하는 고난은 매우 실제적이고, 우리가 말하는 모든 고난을 예수님이 실제로 경험하셨다. 예수님은 고난과 분리되신 것이 아니라 오히려 고 난의 한복판에서 더욱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가는 모습을 보이셨다”고 설명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고난을 피하지 말고 직면해야 하는 이유는 고난은 누구 나 겪어야 하는 것이고, 고난은 우리를 고통받기 이전과 같은 상태로 두지 않 고, 더욱 하나님께 가까이 가게 만들기 때문입니다. 어떤 집사님께서 그렇게 완강하던 아버지께서 암에 걸리시고 평생 믿지 않던 예수님을 믿게 되었다면서 오히려 고난 당함으로 예수 믿게 되셨으니 그것이 은혜였다라고 고백하시는 것 을 들었습니다. 그래서 고난 당하는 것이 우리에게 유익인 것입니다(시 119:71). 고난이 아예 오지 않기를 기도하는 것이 아니라 고난이 찾아오더라도 하나님을 신뢰하면서 기도하는 가운데 하나님께 더 가까이 나아가는 기회로 삼을 수 있는 성도들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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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름다운교회 Apr 21.2024 평범한 교회를 통해 나타나는 복음의 능력
    최근 유튜브를 통해 참 다양한 찬양팀들이 활동하는 것을 보게 되었습니다. 저마다 하나님을 향한 뜨거운 열정과 사랑으로 무장되어 하나님께 예배하는 모습이 제게는 큰 도전이 되었습니다. 특히 그들이 인도하는 예배 현장에 모여 예배드리는 대부분이 청년들이라는 것은 고무적인 일이라고 생각되었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예배들을 볼 때 한가지 우려가 제 마음 속에 함께 찾아왔습니다. ‘청년들이 저곳에 모인 목적이 무엇일까?’ 청년들이 찬양하는 이유와 목적이 무엇일까? 함께 모여 한 목소리로 노래를 부르고 함께 한다는 것에서 오는 카타르시스가 저들을 흥분하게 만드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었습니다. 사실 이러한 카타르시스는 야구나 축구 경기장에 가서 같은 팀을 함께 응원하는 현장에서도 느낄 수 있는 것일지 모릅니다. 꼭 하나님을 예배하는 현장이 아니어도 느낄 수 있는 심리적 현상일 수 있는 것이죠. 물론 유명한 찬양팀들이 주도해 가는 오늘날 예배는 하나님을 몰랐던 사람들이 예배에 쉽게 접근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 측면도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극단적으로 쏠려가는 모습들을 보면서 우려가 생겨나는 것은 저만의 생각이 아닌듯 합니다. 작년에 방영된 다큐멘터리 ‘힐송의 비밀들’에서 문신을 새기고, 감성을 자극하는 목회자가 무대를 휘젓는 락 콘서트 같은 예배에 참석하고자 수만 명의 사람들이 힐송 교회에 나타났다는 것을 보고했습니다. 그 중 뉴욕 힐송 교회 밖에서는 가죽 재킷과 최신 유행 옷을 입은 청년들이 예배를 드리기 위해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이들은 왜 그토록 이러한 예배에 열광하는 것일까요? 예배를 통한 더 큰 자극을 원하는 것은 아닐까요? 그들 또한 자기의 기분을 맞춰 줄 카타르시스를 원했던 것은 아닐까요? 기독교 저작가 C. S. 루이스의 말은 이러한 현상에 대해 우리에게 생각할 것을 던져줍니다. “평범하고 인상적일게 없는 특징 없는 교회에도 많은 결함이 있지만 자기도취적인 지도자와 유해한 문화를 발전시킬 가능성은 적다. 그런 교회는 평범한 사람들에게 의지할 가능성이 더 높다. 기독교 복음의 능력은 유행을 좇는 사람들로 넘쳐나는 예배당이나 유명 인사를 목격하는 것으로 나타나지 않는다. 복음의 능력은 완벽하지 않은 사람들이 평범한 공간에 모여 이 세상에서 진행되고 있는 하나님의 특별한 사랑의 역사에 참여할 때 나타난다.” 나는 왜 지금 출석하고 있는 교회를 다니고 있는지, 나는 무엇을 위해 예배를 드리고 있는지 우리는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하나님께 예배 드린다고 모인 우리의 예배에 높임을 받으셔야 할 하나님은 없고, 우리를 만족시켜 줄 것들로만 가득 차 있다면 그러한 예배는 우리에게 더 큰 공허함만 남길 뿐입니다. 예배를 드린 후에 공허함이 우리 안에 있다면 우리는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하나님께 예배를 드린 것인지, 아니면 나를 위해 예배 드린 것인지. 지극히 평범해 보일 수 있는 우리들의 교회에서 평범한 사람들이 함께 예배를 드리면서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할 때 진정한 복음의 능력이 세상에 나타나게 될 것을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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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름다운교회 Feb 04.2024 하나님이 세우시는 가정과 교회
    사람은 살아가면서 많은 것들을 세우기 위해 애를 쓰며 살아갑니다. 가정을 세우고, 자녀들을 세우고, 기업을 세우는 노력들이 바로 그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을 세우는 노력으로만 그치지 않습니다. 세워진 것들을 잘 관리하고 잘 유지하는 것 또한 중요한 일입니다. 그런데 살다보면 무엇인가를 세우고, 그것을 유지하는 것이 내 힘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되는 때가 있습니다. 몇해 전 한 가정을 심방하는데 그곳에서 들은 이야기입니다. LA에서 이름만 들으면 아는 회사를 운영하던 자기 사장님이 40대 초반이었는데 돈을 엄청나게 잘 벌었다고 합니다. 그러다 보니 고급 차도 몇 대 가지고 있고, 거의 매일 골프를 치러 다녔습니다. 또 이렇게 잘 나가다 보니 건강을 챙기려고 헬스 클럽을 다니면서 온갖 영양제도 챙겨 먹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런 노력과 수고에도 불구하고 잠을 자다가 갑자기 뇌에 문제가 생겨 세상을 떠났다는 이야기를 제게 해 주었습니다. 그러면서 자기도 교회를 한동안 잘 안 나갔는데 그걸 보면서 교회도 열심히 나가고 신앙생활도 열심히 해야겠다고 생각이 들었답니다. 저는 그 이야기를 듣고 이제부터 이분이 신앙생활을 잘 하시겠구나 생각을 했습니다. 그런데 한주 한주 기다려도 교회에 나오지를 않았습니다. 옆에서 그런 일이 일어나는 것을 보아도 다시 신앙을 회복한다는 것이 그렇게 쉬운 일은 아닌가 봅니다.얼마 전부터 새벽예배 후에 기도를 할 때마다 제 머릿 속에 계속해서 맴도는 말씀이 있었습니다. “여호와께서 집을 세우지 아니하시면 세우는 자의 수고가 헛되며 여호와께서 성을 지키지 아니하시면 파수꾼의 깨어 있음이 헛되도다.” 시편 127편 1절의 말씀이죠. 사람이 많은 것들을 세워보려고 온갖 힘과 열정과 수고를 쏟아부어도 그것이 하나님께서 세워주시는 것이 아니라면 그것은 헛되다는 확신을 주셨습니다. 더 나아가 사람이 세우는 것은 언젠가 무너져 버리고 마는 것이라는 생각을 더하셨습니다. 마찬가지로 우리는 열심히 모아놓은 재산을 지키려고 애를 씁니다. 자녀들을 지켜보려고 안간힘을 쓰죠. 그러나 그것도 하나님께서 지켜주시지 않으면 아무 소용 없는 일이라는 깨달음을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께 기도해야 합니다. 하나님께 매달려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세워주시도록 하나님께 모든 것을 맡겨야 합니다. 우리가 형통할 수 있는 비결이 여기에 있습니다.교회는 어떨까요? 우리 아름다운교회가 여기까지 올 수 있었던 배경에는 많은 분들의 땀과 수고와 헌신이 있었습니다. 새로운 도약을 하고있는 지금 시점에서 또 많은 분들이 교회를 세워보고자 새로운 각오를 다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한가지 잊지 말아야 하는 것이 있다면 예전에도 그랬고, 지금도 그렇고, 앞으로도 하나님께서 세워주셔야, 하나님께서 지켜주셔야 교회는 든든하게 설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한 교회는 어떤 비바람과 모진 풍파가 다가온다 하여도 끄떡하지 않고 든든히 세워져 하나님의 뜻을 이땅에 지속적으로 실현해 나갈 것입니다. 우리 다함께 하나님께서 가정과 교회를 세워주시도록 기도에 더욱 힘써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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