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회칼럼(권순혁목사) 2 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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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회칼럼(권순혁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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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름다운교회 May 04.2025 인생의 겨울이라는 길목에서
    최근 마더와이즈라는 프로그램을 저희 교회에서 처음으로 시행했습니다. 5명의 어머니들과 매주 목요일 오전에 모여서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여성으로의 삶이 무엇인지를 깨닫고 아이들을 양육하는 지혜를 하나님으로부터 얻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여성들을 위한 성경공부였지만 제게도 뜻깊은 시간들이었습니다. 처음 마더와이즈로 모이자고 했을 때 여성들, 그리고 어머니들만을 위한 내용인 줄 알았습니다. 하지만 제게도 큰 은혜의 시간이 될 수 있었던 것은 우리가 함께 공부했던 내용이 복음이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생명을 낳고 열매를 생산하기 위해 십자가에 날마다 죽어져야 함과 주님이 우리 안에 역사하시도록 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깨닫는 시간들이었습니다. 이것이 복음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나에겐 아무런 기대와 소망을 발견할 수 없음이 복음이었습니다. 어쩌면 오늘날 세상이 던지는 메시지와는 정반대의 메시지이죠. 세상은 우리 안에 가능성이 있다고 이야기합니다. 나답게 살면 그게 가장 잘 사는 것이라고 이야기합니다. 그런데 오늘날 왜 그리도 스스로 목숨을 끝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는지 생각해 볼 때 이 세상의 메시지는 완전하지 않음을 우리는 기억해야 합니다. 내 안에 아무런 기대와 소망을 발견할 수 없기에 주님이 더욱 빛이 나고, 주님의 생명이 더욱 역사할 수밖에 없는 것이지요. 마치 가장 어두울 때 빛은 가장 밝을 수 있음과 같은 원리이겠지요. 이렇게 마더와이즈 첫 번째 책을 마치고(총 3권의 책을 끝내야 함) 아이들이 여름방학을 하기 때문에 마더와이즈 모임도 잠시 휴식의 시간을 가지기로 했습니다. 여름방학 동안 하나님께서 기회를 주신 듯 하여 무엇 하기를 원하시는지 기도하던 중에 시니어와이즈에 대한 마음을 주셨습니다. 그리고 좋은 책도 만나게 하셨습니다. 바로 드니스 글렌(마더와이즈 책 저자)이 쓴 “동행”이라는 책이었습니다. 그녀 또한 나이로 볼 때 인생의 겨울에 들어섰고, 여러 삶의 위기과 어려움들은 겨울처럼 춥고 힘들고 아픈 시간을 그녀로 하여금 보내게 만들었습니다. 그때 전도서를 연구하며 묵상하면서 인생의 겨울을 어떻게 지나야 하는지에 대한 돌파구를 마련하였다고 합니다. 그래서 나온 책이 바로 “동행”이라는 책입니다. 젊은 청년들과 젊은 부부들도 우리가 잘 양육해야 할 대상들이지만 하나님께서는 제게 중년과 노년에 계신 분들도 하나님의 말씀으로 살아나야 할 분들임을 생각나게 하셨습니다. 인생의 겨울은 누구에게나 찾아옵니다. 그래서 그 시기를 어떻게 보내느냐가 중요하겠지요. 전도서는 그런 우리에게 눈물과 회환과 후회, 복잡하게 뒤섞인 감정과 생각들을 던져 줄 것입니다. 그렇게 휘몰아치는 폭풍우를 뚫고 나오면 그 뒤에 찾아오는 평안과 감격과 감동과 환희를 느끼게 될 것입니다. 인생의 겨울은 따뜻한 위로의 한마디 말과 모락모락 김이 나는 오뎅 국물 한 잔이 크게 느껴지는 법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의 겨울을 그렇게 녹여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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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6
    아름다운교회 Apr 27.2025 따뜻한 세상을 만드는 관대함
    우리 교회는 매주 수요일 저녁에 신앙의 선배들이 유산으로 남겨주신 신앙 서적들을 통해 은혜를 나누고 있습니다. 최근에는 유진 피터슨 목사님이 쓰신 “다윗: 현실에 뿌리 박은 영성(Leap Over a Wall)”이라는 책을 다루고 있는데요, 이 책은 구약에서 예수님의 삶의 그림자로 등장하는 다윗이라는 인물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끌어갑니다. 인생에서 단 한번의 기적이 없었던 사람으로 소개되는 다윗은 크리스챤이 세상에서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에 대한 실제적이고 구체적인 지침들을 제공해 줍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이 책을 읽고 설교를 준비하면서 우리가 얼마나 세상적인 가치관에 물들어 살아가고 있는지를 많이 깨닫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크리스쳔이라는 이름을 가지고, 하나님의 영광이니, 사랑이니, 은혜니, 신실함이니 이런 단어들을 늘 사용하지만 삶에서는 세상 사람들과 전혀 다를 바 없는 삶을 살아가고 있지는 않았는지 반성하게 만드는 책입니다. 그러한 단어들 중 지난 주 수요일에는 관대함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다윗과 그와 함께 한 600명의 사람들이 전쟁에 나간 사이, 아내와 아이들, 그리고 가축들을 아말렉 군대에게 빼앗기게 됩니다. 이들은 전쟁에서 돌아오자마자 빼앗긴 것들을 찾으러 갑니다. 가는 길에 200명의 사람들이 브솔 시내에 지쳐 쓰러져 버리고 말았습니다. 이들은 전쟁으로 인해 완전히 지쳐 있었기 때문에 낙오자들이 생겼던 것입니다. 이제 남은 400명의 군사들과 다윗만 떠납니다. 그리고 술파티를 벌이고 있던 아말렉 군대로부터 빼앗겼던 모든 것들을 되찾아옵니다. 그리고 돌아오는 길. 브솔 시내에 다시 돌아옵니다. 그곳에 낙오되었던 사람들이 반갑게 맞아주었습니다. 그런데 몇몇 사람들이 저 사람들은 우리가 찾아온 것을 받을 자격이 없으니 아내와 자식들만 돌려주자고 외쳤습니다. 그들은 한 것이 아무 것도 없으니 이것은 너무나 상식적인 생각이었습니다. 하지만 다윗만큼은 생각이 달랐습니다. 하나님께서 빼앗겼던 것들을 다시 찾게 하셨으니 우리 모두가 동등하게 나누어 가져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다윗의 반응을 보자마자 ‘어, 뭔가 잘못 됐는데..’라는 생각과 함께 불편함이 밀어오지는 않으셨는지요? 만약 그렇다면 우리 또한 차갑고 냉랭한 세상을 좀 더 차갑게 만들어 가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조건을 따져 가며 줄만큼을 정해서 주는 세상. 받을 자격이 없는 사람에게는 줄 가치도 느끼지 않는 세상. 우리는 이런 세상 속에서 살아가면서 알게 모르게 세상의 가치에 물들어 세상과 똑같이 하고 있는 것이겠지요. 다윗은 그런 점에서 예수님의 관대함을 보여주었습니다. 예수님은 받을 자격이 있는 사람과 없는 사람을 구분해서 사랑하지 않으셨습니다. 더 정확히 이야기하자면 우리 중 누구도 받을 자격이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은 관대함으로 자격 없는 우리에게 따뜻한 정을 베풀어 주셨습니다. 그런 따뜻한 정을 경험한 우리가 삶에서 관대함을 실천하지 않는다면 이 관대함을 누구에게 기대할 수 있을까요? 우리가 따뜻한 세상을 함께 만들어 갔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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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5
    아름다운교회 Apr 20.2025 조금은 이상한 부활절
    부활절 하면 어떤 생각이 먼저 드시나요? 하얀 옷을 입고, 교회에 나가 부활절 예배를 드리던 어린 시절이 저는 떠오릅니다. 부활절은 승리의 날이었고, 기쁨의 날이었고, 환희의 날이었습니다. 더 정확히 이야기하자면 그래야만 하는 날이었습니다. 지금 저에게 드는 생각은 당연히 그래야 하는 날인지는 알겠는데 부활이 도대체 나의 삶과 어떤 연관이 있는가에 대해 조금 더 생각해 보게 됩니다. 그냥 하루 기뻐하는 날로 끝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에서입니다. 실제로 복음서마다 부활의 소식은 당시 사람들에게 기쁘고 환희가 넘치는 소식으로 처음에는 다가가지 못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마가는 단 8절만으로 부활의 이야기를 마무리합니다. 헬라어 원문으로 보면 “왜냐하면”이라는 접속사 gar로 마가복음을 마무리하게 됩니다. 그래서 마가는 “여인들은 아무에게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왜냐하면...”이라는 여운을 남기고 이야기를 마칩니다. 이 자체만 놓고 보더라도 부활의 이야기가 혼란스러움으로 마치고 있는 것이죠. 마태는 부활의 이야기를 마가보다 두 절 더 보태서 전하고 있습니다. 마태는 마가복음에서 두려움 속에 침묵하던 여인이 부활하신 예수님을 직접 만났음을 기록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의 다리를 붙잡고 경배 드린 여인은 기쁨과 환희가 아닌 두려움에 사로잡혔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여인에게 가장 먼저 “두려워하지 말라”고 말씀하셨죠. 누가는 마태보다 두 절 더 보탰습니다. 마가보다는 네 절을 더 보탠 것이죠. 누가가 전한 부활의 이야기에서도 처음 소식을 들은 이들의 반응이 여전히 혼란스럽고 회의적입니다. 무덤을 찾은 여인들의 말을 들은 제자들은 그 이야기를 허튼 소리로 치부했습니다. 베드로는 흥미가 생겨 무덤에 가보지만, 정돈된 수의만 확인한 뒤 의아해하며 돌아갑니다. 그가 예수님의 부활을 정말 믿었다면 그는 무덤을 확인한 후 기뻐서 어쩔 줄 몰라 했어야만 합니다. 하지만 그런 기록은 없습니다. 요한은 부활의 이야기를 어떻게 기록했을까요? 부활절 아침에 있었던 이야기를 가장 길게 전했습니다. 하지만 요한조차도 부활의 주님을 만나 기뻐했던 막달라 마리아를 제외하고는 우리가 기대했던 부활절의 기쁨과 환희를 표현하고 있지는 않습니다. 그렇다면 예상 밖의 이야기들을 어떻게 다루어야 할까요? 부활절 아침에 있었던 일들을 애써 우리식으로 바꾸어야만 할까요? 여인들과 제자들의 반응을 그대로 받아들이고 네명의 복음서 저자는 왜 그렇게 이야기를 전하고 있는지를 생각해 봐야만 할까요? 이 질문에 대한 답은 여러분이 생각해 보았으면 합니다. 굳이 성경을 우리 식으로 바꾸어 해석하지는 말아야 할 것입니다. 우리의 기대와 상식에 맞게 왜곡할 필요도 없을 것입니다. 성경을 있는 그대로, 하나님의 관점과 마음을 중심으로 생각해 보고, 해석하는 태도가 우리에게 필요하겠지요. 아! 한가지 힌트는 드리겠습니다. ‘승리의 이야기’를 ‘승리답지 않게’ 전하는 아이러니가 조금은 이상한 부활절 아침을 해석하는 힌트가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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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4
    아름다운교회 Apr 13.2025 좋은 습관의 중요성
    아이들이 학교를 마치고 엄마가 오기를 기다리다가 보았던 광경을 이야기 해 주었습니다. 어떤 차가 아이를 픽업하기 위해 유턴을 하는데 경찰이 있는지 모르고 불법 유턴을 한 것입니다. 경찰은 기다렸다는 듯이 그 차를 따라가서 티켓을 발부했답니다. 그러던 사이 다른 차 서너대가 똑같이 유턴을 하더랍니다. 그런데 경찰이 한 차를 잡고 있느라 그 차들은 걸리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세상은 참 불공평하죠. 어떤 차는 걸리고, 어떤 차는 똑같은 잘못을 했는데도 안 걸렸으니 말이죠. 우리는 이런 걸 보면서 걸린 차는 재수가 없어서 걸렸다고 생각할지 모릅니다. 과연 그럴까요? 제가 예전에 예비군 훈련장에서 운전교육을 받은 적이 있습니다. 예비군 훈련에서 이런 것도 다 가르치나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저는 그때의 교육을 아직도 잊을 수가 없습니다. 강사분께서 말씀하시기를 우리가 운전을 하다가 사고가 나는 것은 재수가 없어서 나는게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여러 녹화된 영상자료를 보여주시면서 그 사고가 나기 전에 이미 우리는 똑같은 운전 습관을 반복하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것도 그것이 잘못된 습관인지도 모르고 말입니다. 저는 그때 그 강의를 들으면서 운전하면서 핸드폰을 보던 습관을 버려야겠다고 굳게 다짐했습니다. 그게 습관이 되면 반복하게 되고, 그것이 어느 순간 사고를 일으킬 수 있기 때문입니다. 경찰에게 잡힌 그 차의 운전자는 모르긴 몰라도 그날만 불법 유턴을 한 것은 아닐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러니 재수가 없어서 걸린 것일까요? 걸릴 때가 되어서 걸린 것이죠. 그날 운 좋게 걸리지 않은 차들은 그럼 재수가 좋아서 안 걸린 것일까요? 인식하지 않고 계속 하다가는 언젠가 그것에 대한 댓가를 혹독하게 치러야 할지 모릅니다. 습관이 이렇게 무섭습니다. 특히 잘못된 습관은 평소에는 아무런 문제를 일으키지 않는 것처럼 보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잘못된 습관은 언젠가 반드시 좋지 않은 결과를 가져올 날이 있습니다. 그때 재수가 없어서 이렇게 되었다고 하소연할 수 있을까요? 그런데 우리 중 많은 사람들이 그런 반응을 보이는 경향이 있습니다. 재수가 없어서 그렇게 되었다는 것이죠. 하지만 잘 생각해 봐야 합니다. 그렇게 될 때까지 반복적으로 생각하고, 반복적으로 행동해 오던 잘못된 습관을 내가 가지고 있지 않은지 객관적으로 따져보고, 진지하게 생각해 보아야 잘못 해오던 삶의 방식이 보이고, 그래야 우리는 변화의 출발에 설 수 있습니다. 그런 점에서 새벽마다 성전에 나와 아침을 기도로 시작할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좋은 습관인지 모르겠습니다. 아침마다 하나님 앞에 서면 내가 잘못 생각하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내가 잘못 행동하고 있는 것은 무엇인지 나의 잘못된 습관들을 낱낱이 깨닫게 하시기 때문이죠. 잘못된 습관이 있다면 하루 빨리 고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좋은 습관을 길러보시기 바랍니다. 특별히 아침마다 하나님께 나와 기도하는 습관을 길러보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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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3
    아름다운교회 Apr 06.2025 십자가를 바라보는 우리의 마음
    우리는 주변에서 흔치 않게 십자가를 볼 기회들이 있습니다. 십자가 목걸이, 십자가 그림, 십자가 간판, 때때로 차 안 백미러에 걸려있는 십자가를 보기도 합니다. 우리 주변에 이렇게 십자가가 흔하다 보니 십자가를 보는 우리의 마음에 감동이 사라진지 오래 되지는 않았나 생각해 보게 됩니다. 십자가를 봐도 별 감흥이 없다고 해야 할까요? 저만 해도 십자가를 바라보는 마음이 예전 같지 않음을 느꼈습니다. 이건 아닌데 하는 생각에 제 마음이 왜 이렇게 되었을까 진지하게 고민해보고 생각해 보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당시 십자가는 부끄러움의 상징이었습니다. 십자가형은 처형 당하는 자를 벌거벗겨 눈에 띄는 장소, 네거리, 극장 안, 높은 언덕, 범행 장소에 공개적으로 진열시켰습니다. 그러니 얼마나 수치스럽고 모욕적인 죽음이었을까 생각해 보게 됩니다. 그것 뿐만 아닙니다. 십자가는 가장 야만적이고 잔인한 처형방법이었습니다. 초대교회 유대인 사가인 요세푸스는 십자가형을 실제로 목격한 사람입니다. 그가 말하기를 “사지를 뻗고서 처벌을 받을 때, 그들은 사형틀을 그들의 운명으로 받아들인다. 그들은 포박을 당하여 가장 뼈 아픈 고통을 받으며, 못 박힌다. 그들의 시체는 새들의 먹이가 되고 개들은 모질게 씹어 먹는다.” 아마도 십자가에 달려 죽은 시체를 새들과 개들이 달려들어 뜯어 먹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로마 네로 시대의 스토아 철학자 세네카 또한 십자가형을 직접 목도하고 이렇게 증언했습니다. “나는 거기에서 십자가들을 보았다. 단번에 숨을 거두기보다 방울방울 피를 흘리며 사지가 갈기갈기 찢기며, 고통 가운데서 서서히 죽어가기를 원하는 사람을 발견할 수 있는가? 저주 받은 나무에 묶여 오랜 고통에 시달리고, 몰골은 흉악해졌고, 채찍을 맞은 자국이 어깨와 가슴에 부풀어 오르고 단말마의 고통 가운데서 마지막 숨을 몰아 쉬기를 원하는 사람을 발견할 수 있는가? 그는 십자가에 달리기 전에 살려달라고 수없이 애원하였을 것이다.” 이런 기록들을 볼 때 십자가형은 정말 끔찍한 처형방식이었음이 분명합니다. 그런 십자가를 장식품으로 목과 손에 매고, 차에 걸어놓는다는 것이 과연 맞는 일일까 생각해 보게 되었습니다. 죄인들을 위해 이렇게 끔찍한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신 예수님을 생각할 때 나를 꾸미고 드러내기 위해 십자가를 악세사리로 하고 다닐 수는 없을 것입니다. 십자가의 이런 의미들을 묵상하면서 저야 말로 십자가를 바라보는 마음이 다시 회복되게 해달라고 매달려 기도했습니다. 왜 예수님이 십자가라는 방법으로 죽으셔야만 했는지, 왜 예수님이 그 고통스러운 십자가를 아무 말도 없이 견디셔야만 했는지, 왜 예수님이 사람들 앞에서 벌거벗겨져 수치를 당하셔야만 했는지, 왜 예수님이 십자가 위에서 “저들의 죄를 용서해 달라고, 저들은 저들의 죄를 알지 못한다”고 하셨는지. 지금은 이런 것들을 고민하면서 십자가를 바라보는 우리의 마음이 다시 회복될 수 있도록 기도의 시간을 가져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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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2
    아름다운교회 Mar 30.2025 나는 죽고 예수로 사는 삶
    우리는 저마다 몇 개 이상의 책임의 무게를 지고 살아갑니다. 가정에서는 부모로, 자녀로, 직장에서는 직급으로, 교회에서는 직분으로, 사회에서는 시민으로, 세상에서는 한 인간으로 여러 가지 책임을 동시에 수행해야 합니다. 그런데 이러한 책임들이 생각보다 가볍지 않습니다. 하나의 역할도 감당하기가 벅찬데 때로는 몇가지 이상을 동시에 수행해야 할 때 버거움을 느끼게 되죠. 그렇다고 기도하지 않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안 믿는 것도 아닙니다. 하나님께 맡기지 않는 것도 아닙니다. 그런데도 가슴 한켠에는 뭔가 모를 짓누름이 있는 것을 느낄 때 그것이 바로 나의 십자가라는 생각이 듭니다. 이런 생각이 들 때마다 예수님이 하신 한가지 말씀이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나의 멍에는 쉽고 가볍다는 말씀이었습니다. 그 말씀 앞에 나오는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는 말씀까지는 좋았습니다. “십자가를 주님께 맡기면 쉼을 주시겠다”는 말씀까지는 이해하기가 어렵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 다음 말씀이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리하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이건 또 무슨 말입니까? 멍에를 다 맡기라고 하실 때는 언제이고, 그 멍에를 다시 메라고 하십니다. 그리고 그 멍에는 쉽고 가볍다니요. 얼마 전부터 마더와이즈라는 훈련을 아이들을 키우고 있는 엄마들을 대상으로 진행 중에 있습니다. 매일 주어진 분량을 공부한 뒤에, 일주일에 한 번 함께 모여 받은 은혜를 나누는 시간으로 채워가고 있죠. 최근 계속해서 등장하는 주제가 십자가에 대한 것이었습니다. 십자가가 우리를 가로막는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십자가가 우리를 가로막을 때 진정한 자유함을 얻을 수 있는 기회가 우리에게 찾아온 것이라는 내용들을 마주하고 있습니다. 핵심은 죽으라는 것입니다. 육신을 십자가에 못 박으라는 것입니다. 육신의 생각을 버리라는 것입니다. 자녀들에게 가졌던 성공에 대한 기대, 욕심, 욕망, 모두 육신의 생각이기에 십자가에 못 박으라는 것입니다. 이걸 머리로는 알고 있었습니다. 실천해야겠다 매일 다짐하고는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것이 하루 아침에 이루어지는 것이 아님을 배우게 하셨습니다. 깨닫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실제로 매일매일 적용하도록 성령님께서 도우셨습니다. 최근 내 멍에가 쉽고 가볍다는 말씀이 조금 이해되기 시작했습니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체험되기 시작했습니다. 내 육신의 것들을 못 박고 내 안에 계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훈련을 하니 내게 주어진 십자가의 무게가 너무 가볍게 느껴졌습니다. 내가 지고 가려고 할 때는 어렵고 무거웠던 것이 내가 죽고 예수가 내 안에 사시니 여전히 그 십자가는 그대로 있는데 마주하는 것이 두렵지 않고, 그것을 지고 가는 것이 쉽고 가벼워졌습니다. 내가 지고 가고 있는 줄 알았는데 예수님이 이미 그것을 어깨에 둘러메고 가고 계신 것을 눈을 열어 보게 하셨기 때문입니다. 저는 이 진리 안에서 참 자유를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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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름다운교회 Mar 23.2025 살아있는 것에 대한 감사
    우리는 현재 가지고 있는 것들에 대한 소중함을 잃어버리고 살아갈 때가 많이 있습니다. 그것을 잃어버리고 난 다음에야 그것들이 얼마나 나에게 소중한 것들이었는지를 뒤늦게 깨닫곤 하죠. 하지만 잃어버리기 전에 그 소중함을 깨닫고 살아간다면 그것이 복된 인생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지난 주 어느 날, 새벽예배를 나오기 위해 집을 나섰습니다. 저희 집에서 교회로 오기 위해 레인보우 길로 좌회전을 하려고 신호를 기다리고 있던 중이었습니다. 기다리던 차량은 저밖에 없었죠. 그런데 뭔가 심상치 않은 기운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레인보우 길로 북쪽방향에서 차가 한 대 엄청난 속도로 달려오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뒤를 추격하는 차량이 또 한 대 있었습니다. 뒤에 있는 차량이 경찰차는 아닌 것으로 보아 무슨 사연인지 굉장히 궁금해졌습니다. 그런데 앞에서 도주하던 차량이 갑자기 우회전을 시도하였습니다. 하지만 속도를 제어하지 못하고 끼익 소리를 내며 점점 제 쪽으로 다가오게 되었습니다. 저는 그 상황에서 어떻게 해야 할지 순간적으로 판단이 서지 않았습니다. 더 정확히 이야기하자면 다리가 얼어붙었습니다. 사람이 순간적으로 당황하게 되면 다리가 먼저 움직이지 않는다고 하던데 그것이 사실이었습니다. 그렇게 점점 다가오던 차량이 중앙분리대를 쿵하고 넘어서더니 가까스로 제 차를 스치듯이 충돌하지 않고 방향을 틀어서 달아났습니다. 그 차가 지나간 뒤 간담이 서늘해졌습니다. 그러면서 순간적으로 그 차가 나를 덮쳤다면 나는 어떻게 됐을까 생각이 들었습니다. 짧게는 새벽예배 말씀 듣기 위해 모여 있는 성도님들을 무사하게 만날 수 있다는 사실에 감사했습니다. 그리고 시간이 흐른 뒤 점점 감사의 깊이가 더해졌습니다. 그러다가 살아있는 것에 대한 경이로움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지금 내가 살아있는 것이 결코 우연이 아님을 깨닫게 된 것이지요. 제가 한국에 살 때 예비군 훈련을 갔다가 교통안전교육을 받은 적이 있습니다. 그분의 강의의 요점은 간단명료했습니다. 내가 운전을 잘해서 사고가 나지 않았다는 착각을 하지 말라는 것이었습니다. 내가 아무리 운전을 잘해도 사고가 안 나는 것은 운전자 모두가 안전수칙을 잘 지켰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다시 말해 내가 잘해서가 아니라 상대방이 잘해서 사고가 안 난 것이라는 말이었습니다. 그때도 그 교육이 저에게 큰 깨달음을 주었었는데 이번 일로 다시 한번 느끼게 되었습니다. 내가 살아있는 것이 우연이 아님을 말입니다. 신앙인은 살아있는 것에 감사해야 하는 사람들입니다. 생사를 주관하시는 분이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지금 내가 살아있는 것이 내가 무언가를 잘해서 그렇다고요? 조금은 도움이 되었을지 모르겠습니다만 하나님이 생명을 연장시켜 주셨기 때문에 살아있다는 사실을 결코 부정할 수 없을 것입니다. 내가 건강을 지킬 수 있다고요? 내과의사가 암에 걸려 갑자기 세상을 떠났다는 이야기가 있는 것을 보면 그것도 꼭 맞는 말은 아닌 듯 합니다. 오늘 살아있음에 감사해야겠습니다. 오늘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며 살아야겠습니다. 그리고 오늘을 주신 목적과 이유를 잊지 않고 살아있게 하신 그분을 위해 오늘 하루를 살아드려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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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름다운교회 Mar 16.2025 있을 때는 몰랐습니다
    지난 주에는 아름다운교회 역사에 길이 남을 리더십 교체가 있었습니다. 지역에서, 타주에서까지 많은 분들이 참석해 주셔서 자리를 빛내 주셨습니다. 저는 라스베가스 교회 역사에 이렇게 리더십이 아름답게 이양되는 일이 처음 있는 일이라고 들어 왔습니다. 행사가 끝난 후 돌아가시는 분들의 말에 이것이 얼마나 역사적으로 의미있고 아름다운 일이었는지를 더욱 실감할 수 있었습니다. 굳이 말을 하지 않아도 오신 손님들, 특히 목사님들의 눈가가 촉촉하게 젖어 있었고, 얼굴에는 은혜를 머금은 표정들을 하고 계셨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모든 예식이 마쳐지고, 주일 저녁까지 손님들을 대접해야 했기에 정신이 없었습니다. 그리고 찾아온 월요일, 모처럼만에 정신을 좀 차리고, 이것저것 생각하고 돌아볼 수 있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습니다. 그렇게 곰곰이 생각해 보니, 어느 것 하나 제 힘으로 된 것이 하나도 없음을 더욱 깊이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1년여 간의 원로목사님과 함께 보냈던 시간, 부족하고 모자란 저를 사랑으로 격려해 주셨던 성도님들의 사랑의 손길, 가족들의 지지와 인내, 무엇보다 하나님의 인도하심, 이 모든 것이 하나라도 없었다면 이 자리까지 올 수 없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제가 한가지를 크게 놓치고 있었습니다. 바로 저희 부모님의 희생과 사랑이었습니다. 아들이 담임목사로 취임한다고 이역만리 먼 곳에서 저희 부모님이 이곳에 찾아오셨습니다. 제가 외아들이니 얼마나 이 순간이 기쁘셨을까요? 그런데 사실 저는 원래부터 외아들이 아니었습니다. 여동생이 하나 있었죠. 하지만 하나님의 뜻하심이 있어 약 30년 전 먼저 하나님 품에 안겼습니다. 아버지, 어머니는 목회 하시느라 어느 누구에게 아픈 마음을 제대로 토로하실 수도 없었을 터입니다. 그 고통스러운 마음을 누를 수 없어 뜬 눈으로 밤새 기도하며 지내실 수밖에 없으셨던 것을 최근에야 알았습니다. 또 한가지 최근에 저의 마음을 더욱 시리게 한 것은 그 당시 아버지, 어머니의 나이가 지금의 저보다 어린 40대 초반의 나이였다는 것입니다. 저에게 아버지, 어머니는 늘 어른이었습니다. 그래서 그 어려움도 당연히 이겨내셨겠지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최근 둘째 아이의 생일 때 제 여동생의 나이가 된 것을 깨달으면서 아버지, 어머니는 그때 저처럼 어린 아빠, 엄마였다는 것을 깨닫게 된 것이죠. 그러니 홀로 남은 자식인 저에 대한 마음은 더욱 각별할 수밖에 없었을 터입니다. 그래서 저를 위해 예나 지금이나 얼마나 기도해 주시는지 모릅니다. 그런 부모님이 지난 주일 행사가 끝나고 원로목사님과 시애틀로 여행을 떠났습니다. 두분에게 주무시라고 깔아놓았던 매트가 비어있는 것을 보는 제 마음이 왜 이리 허전했을까요? 함께 식탁에 앉아 아무 말도 없이 함께 밥을 먹던 그 자리에 두분이 계시지 않는 것이 왜 이리 이상하게 느껴졌을까요? 그냥 그 자리에 계신다는 것만으로도 저에게 든든함을 주었다는 것을 여행을 떠나시고 나서야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있을 때는 몰랐습니다. 당연히 그래야 되는 줄 알았습니다. 안 되겠습니다. 있을 때도 아는 사람이 되어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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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
    아름다운교회 Mar 09.2025 형제가 연합함이 어찌 그리 선하고 아름다운고
    오늘은 우리 교회가 창립 16주년을 맞이하는 주일입니다. 2009년, 이땅에 처음 아름다운교회가 세워지게 하시고, 은혜 가운데 복음의 능력을 나타내게 하신 하나님께 모든 영광과 찬송과 존귀를 올려 드립니다. 참 많은 사람들이 이곳을 오고 갔습니다. 아름다운교회는 지친 새가 쉼을 얻고 가는 열매가 많은 나무와 같이 하나님 나라의 풍성한 나무 되어 사명을 잘 감당해 왔습니다. 마음이 아프고 상한 자들에게는 회복의 은혜가, 외롭고 소외된 자들에게는 함께함의 은혜가, 육신의 필요를 가지고 온 사람들에게는 적절한 필요들이 채워지는 아낌없이 주는 나무가 바로 아름다운교회였습니다. 이제 우리 아름다운교회가 창립 16주년을 맞이하여 지금까지 인도하신 하나님께 감사함으로 예배드리는 시간을 맞이했습니다. 그리고 이번 창립 기념 주일이 더욱 뜻깊은 것은 지금까지 교회에 모든 것을 쏟아 부으시고, 눈물의 기도와 아낌없는 헌신으로 교회를 섬겨오신 박대우 목사님을 원로목사님으로 추대하고, 제가 새로운 담임목사로 취임하는 예식이 있기 때문입니다. 이 일을 위해 보이지 않는 곳에서 수고하시고 헌신하신 수많은 손길들이 있었습니다. 버려진 건축자재들을 한곳으로 모아 정리하고, 죽어서 뿌리가 뽑혀진 자리에 새로운 소나무를 심고 거름과 비료를 주고, 주차장에 라인을 새로 긋고, 잡초와 가라지들을 모두 뽑고, 선물을 포장하고, 음식을 준비하고, 감사패를 만들고, 식당을 예약하고, 그 외에도 수많은 일들을 성도님들이 감당해 주셨습니다. 더욱 감사했던 것은 한분도 억지로 하거나 마지못해 하지 않고 기쁨과 감사함으로 섬겨주셨다는 것입니다. 사업과 직장, 그리고 육아로 시간을 낼 수 없는 상황이셨을 텐데도 교회를 섬기는 모습에 기쁨이 넘침을 보았습니다. 한마음과 한뜻을 가지고 맡은 일들을 기쁨으로 해 나가는 모습을 보며 저는 그 옛날 다윗의 마음이 어떠했을지를 상상해 보게 되었습니다. 다윗은 예배를 드리기 위해 사람들이 성전에 올라오는 모습을 보면서 이렇게 감탄하며 외쳤습니다. “보라 형제가 연합하여 동거함이 어찌 그리 선하고 아름다운고” 다윗은 하나님께 예배드리기 위해 한마음으로 하나님이 계시는 곳으로 오르는 하나님의 백성들을 보며 마음이 무척이나 즐겁고 기뻤던 모양입니다. 그도 그럴 것이 언약궤는 블레셋에 빼앗겨서 오랫동안 떠나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언약궤가 예루살렘에 돌아오게 된 것입니다. 언약궤가 사라져 있는 동안 이스라엘은 마음이 나뉘어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구심점이 없었던 것이죠. 세상에 그 어떤 것으로 그들을 하나로 묶을 수 없었습니다. 오직 하나님만이 그의 백성들을 하나로 연합시킬 근거를 제공해 주실 수 있기 때문이었죠. 그러니 언약궤가 돌아오게 되면서 백성들의 연합을 보는 것은 너무나 기쁠 수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저는 이번에 이러한 다윗의 마음을 조금 느낄 수 있었습니다. 형제가 연합하여 동거하는 것이 이렇게 아름다울 수 있구나. 즐거운 일이구나. 저는 여기서 우리 공동체가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지를 배우게 되었습니다. 한마음으로, 같은 뜻을 가지고 우리의 하나님께 예배하며 그분을 섬깁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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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8
    아름다운교회 Mar 02.2025 이취임식을 앞두고
    결혼을 앞둔 사람들에게 제가 흔히 해 주었던 말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결혼식을 준비하지 말고 결혼을 준비하라”는 말이었습니다. 결혼을 앞둔 예비신랑, 신부는 인생에 있어 다시 오지 않을 결혼식이라는 것을 준비하기 위해 집을 장만하고, 가구와 가전을 준비하고, 반지와 드레스, 그리고 머리, 화장, 결혼 사진 등을 준비하느라 모든 에너지를 쏟아 붓습니다. 그런데 결혼식을 준비하다 보면 놓치게 되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결혼을 준비하는 것입니다. 결혼이 무엇인지, 결혼은 왜 해야 하는 것인지, 심지어 내가 결혼할 사람은 어떤 사람인지, 또 어떻게 함께 결혼 생활을 행복하게 유지해 나갈 수 있을지 생각해 보며 결혼을 준비하는 것이 결혼식을 준비하는 것 이상으로 중요하다는 것을 생각해 봅니다. 그래서 저는 결혼을 앞둔 사람들에게 늘 이것을 강조해 왔던 것이지요. 그런데 이상합니다. 결혼식을 준비하는 것보다 결혼을 준비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라고 생각해 왔던 제가 똑같은 잘못을 범하고 있었습니다. 다음 주면 우리 아름다운교회가 창립 제16주년을 맞아 기념예배를 오전에 드리고, 오후에는 원로목사 추대 및 제2대 담임목사 취임 감사예배를 드리게 됩니다. 이취임식을 하게 되는 것이죠. 이취임식을 준비하기 위해 이취임식 준비위원회가 구성되어 거의 다섯 달 정도를 준비해 온 것으로 기억합니다. 그동안 이취임식을 위한 많은 준비들이 있었습니다. 점심식사는 어떻게 할 것이며, 오신 손님들에게는 어떤 선물을 드릴 것이며, 어떤 분이 순서를 맞아주실 것이며, 추대패, 취임패, 감사패 등등 많은 것들을 준비해 왔습니다. 물론 저 혼자 한 것은 절대 아닙니다. 많은 분들이 이 일에 함께 해 주셨고, 역할 분담을 해 주셔서 각자의 위치에서 이취임식을 잘 준비해 왔다고 확신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취임식을 준비하느라 너무 분주한 나머지 놓치고 있는 것이 있다는 생각이 갑자기 들었습니다. 이취임식은 잘 준비했는데 이취임에 대해서는 뭘 준비하고 있는가 하는 것이었습니다. 물론 제게는 취임에 관한 것만 해당되겠지요. 담임목사로서 취임을 하면서 제 마음 안에 ‘정말 이 교회가 하나님이 보내주신 교회인가? 정말 이 교회에서 목사로서 양무리들을 이끄는 일들을 할 수 있을 것인가? 우리 교회가 나아가야 할 사명과 비전은 무엇인가? 더 근본적으로는 정말 이 길을 내가 가야만 하는 것인가?’ 등등의 많은 질문들에 대해 하나님께 묻고 답을 얻는 시간이 절대적으로 부족했음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늦었지만 지난 한 주 동안, 이제야 취임을 준비하는 시간을 가졌음을 고백합니다. 아울러 이취임식은 추대되시는 원로목사님과 취임하게 되는 저만 준비해야 하는 것은 아닐 거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추대되시는 원로목사님의 지난 16년간의 행적을 마음으로 기억하고 인정하며 감사를 표헌함과 동시에 새로운 리더를 하나님이 세우신 하나님의 종으로 알아 기쁘게 받아들이는 준비를 해야 하겠지요. 그리고 그 누구보다 아름다운교회를 이땅에 세우시고 하나님의 나라를 위한 아름다운 도구로 사용해 오시고, 앞으로 또 그렇게 하실 하나님께 영광과 감사와 찬양을 올려드릴 준비를 잘 해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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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7
    아름다운교회 Feb 23.2025 하나님을 만나면 해결됩니다
    우리가 살다 보면 참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을 만나게 됩니다. 오래전에 신호를 기다리는데 뒤에서 갑자기 쿵 하는 소리가 났습니다. 누군가 제 차를 뒤에서 추돌한 것이지요. 처음에는 이게 무슨 일인가 했습니다. 정신을 차리고 밖으로 나와보니 뒷차 운전자가 벌써 나와서 차를 살피고 있었습니다. 가만 보니 한국 사람 같기도 했습니다. 처음에는 영어로 좀 대화를 하다가 그분이 먼저 한국말로 저에게 한국 사람이냐고 물어보았습니다. 저는 너무나 반가웠습니다. 그때부터 그분과 대화를 편안하게 나누었습니다. 제가 하고 싶은 말을 다 할 수 있으니 얼마나 좋던지요. 그래서였을까요? 저는 마음을 푹 놓고 사진 몇장을 찍고 상대방의 운전면허증도 찍고 나중에 서로 연락하자고 하고 헤어졌습니다. 그리고 차에 타기 직전에도 뭐든지 필요하면 연락을 달라고 하고 그 자리를 떠났습니다. 그런데 웬일입니까? 그 이후로 상대방 운전자가 연락이 두절 되었습니다. 전화/문자를 해도 감감 무소식이었습니다. 그리고 가장 큰 문제가 발생했습니다. 제가 상대방에 대한 보험 정보를 전혀 받지 않은 것입니다. 정중히 이 문제들을 좋게 해결하고 싶다고 연락을 했는데도 아무 반응을 보이지 않았습니다. 왜 이런 일이 일어 났을까 하는 혼란스러운 생각에 사로잡혔습니다. 어디 이것 뿐인가요? 우리의 삶에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 시도 때도 없이 찾아오곤 합니다. 그럴 때 어떻게 해야 할까요? 하박국 선지자가 그랬습니다. 모든 상황이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물었습니다. “하나님, 하나님이 계신다면 이 세상이 왜 이렇습니까? 어떻게 이런 일들이 일어날 수 있습니까?” 그 당시 이스라엘에는 이해되지 않는 일들이 참 많이 일어났기 때문입니다. 온 땅에 죄악이 가득 차고 죄인들이 의인들을 괴롭혔습니다. 그런데 하박국의 마음을 더욱 아프게 한 건 하나님은 그 가운데 아무 일도 하지 않으시는 것만 같이 느껴졌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하박국은 끊임없이 하나님께 묻고 또 물었습니다. 그러자 하나님도 더 이상 대답을 안하면 안 되겠다고 느끼셨는지 말씀을 주십니다. 그런데 그 대답은 의외였습니다. 악한 세력이었던 바벨론을 일으킨 것은 다름 아닌 하나님이시라는 것입니다. 하박국은 처음에 이게 무슨 말인지 몰라 눈이 휘둥그레졌습니다. 그래서 다시 하나님께 물었습니다. “악인이 자기보다 의로운 사람을 삼키는데 잠잠하고만 계실 겁니까?” 그런데 거기에는 하나님의 숨은 의도가 있었습니다. 그것은 바벨론이 주는 고통과 아픔을 통해 믿음으로 살지 않고, 자신의 생각에 이끌려 살아가고 있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깨닫게 하시고 새롭게 하시려는 것이었습니다. 다시 말해 바벨론을 통해 이스라엘 백성들의 마음을 낮추고 낮추셔서 하나님을 의지하며 살게 하려는 뜻이 숨겨져 있었던 것이었죠. 하박국은 이해할 수 없는 상황들을 그제서야 깨닫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을 만나서 답을 얻게 된 것이지요. 우리 인생에 도무지 해석이 되지 않는 문제들이 일어날 때 어디서 답을 찾을 수 있을까요? 오로지 하나님을 만날 때만 우리에게 일어난 일들을 제대로 해석하고 그것들을 바탕으로 해결해 나갈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 나아가 보지 않으시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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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6
    아름다운교회 Feb 16.2025 훈련이 필요합니다
    2004년 4월 12일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제가 군대에 들어간 날이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부모님을 뒤로 하고 저와 같은 머리 스타일을 한 사람들과 함께 부대로 들어가는데 기분이 이상했습니다. 건물을 돌아 들어가기 직전 부모님이 계시는 곳을 향해 손을 흔들어 마지막 인사를 건냈습니다. 그리고 부모님들이 볼 수 없는 곳에 들어서자마자 조교들이 신병들을 향해 소리를 쳤습니다. “여기서 웃지 않습니다. 여기서 소리 내지 않습니다. 여기서 똑바로 줄 섭니다. 여기서 오와 열을 맞춥니다. 여기서 시키는 대로만 합니다.” 갑자기 정신이 번쩍 들었습니다. 잘못 하다가는 여기서 살아남지 못하겠구나 하는 긴장감이 돌아서였습니다. 그때부터 신병에게 주어지는 5주간의 훈련이 시작되었습니다. 1주차에는 제식훈련이라는 것을 했습니다. 조교의 구령에 맞추어 앞으로 갔다가 옆으로 돌아서 갔다가 뒤를 돌아서 갔다가 하는 훈련이었습니다. 한 사람이라도 맞지 않으면 처음부터 다시 시작했습니다. 박자 감각이 없는 사람들은 틀리기 일쑤였습니다. 그러면 훈련을 받는 신병들 전체가 벌을 받았습니다. 그때는 그것이 너무나 부당하다고 여겨졌습니다. 내 잘못도 아닌데 왜 내가 혼나야 하나? 그래서 틀리는 병사들에게 비난의 눈빛을 보내며 한숨을 쉬었습니다. 그러면 어김없이 조교의 목소리가 또 들려옵니다. “소리 내지 않습니다. 웃지 않습니다. 비난하지 않습니다.” 그렇게 1주차를 보내고 2주, 3주, 4주, 5주를 보내고 훈련소를 나오는 날, 하늘을 날아갈 것 같은 기분이었습니다. 그만큼 훈련이 힘들었기 때문입니다. 지금 와서 그 훈련이 왜 그렇게 힘들었을까 생각해 보게 됩니다. 그리고 이유를 발견했습니다. 평소의 내 모습이 아닌 부분을 훈련해야 했기에 힘들었었다는 것을요. 우리는 훈련이 필요합니다. 훈련하지 않으면 우리는 늘 그대로입니다. 제자리걸음을 할 수밖에 없죠. 살아가면서 우리는 익숙한 쪽으로만, 편한 쪽으로만 머무르려 합니다. 그러다보면 익숙하지 않은 부분에 대해 점점 더 불편함을 느끼게 되죠. 한국을 다녀온 분에게 도수치료라는 것을 듣게 되었습니다. 이 치료는 평소에 쓰지 않는 근육을 강화시켜서 몸의 밸런스를 회복시키는 치료라고 합니다. 처음에는 이 훈련을 쉽게 생각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생각보다 안 쓰던 근육들을 강화시키는 것이 그렇게도 아프고 힘들었다고 합니다. 그만큼 몸이 본능적으로 쓰는 근육들만을 사용해 왔기 때문인 것이죠. 저도 책상에 오래 앉아 있다보면 저도 모르게 편한 자세로 앉아 있는 것을 느끼게 됩니다. 계속 그 자세로만 앉아 있다 보니 점점 몸이 틀어져서 나중에는 허리와 목에 통증이 오는 경우들이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훈련이 필요합니다. 우리의 몸 뿐만 아니라 우리의 마음과 특히 우리의 영혼은 훈련을 하지 않으면 죄된 본성 그대로 살아가려는 습성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도 우리 아름다운교회는 다양한 훈련을 할 수 있는 기회들을 만들고 있습니다. 새롭게 시작된 훈련을 통해 이전에 하지 않던 것들을 하는 것이 버겁고 힘들겠지만 이 훈련들이 결코 헛되지 않을 것임을 언젠가 느끼게 될 것입니다. 힘들겠지만 우리 모두 훈련을 받읍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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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5
    아름다운교회 Feb 09.2025 주님의 시간과 나의 시간
    제 핸드폰 속에는 수많은 일정들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병원 예약 날짜, 심방 날짜, 아이들 스케쥴 등이 들어 있죠. 그 중에서도 마감 시간까지 절대 놓치지 말아야 할 스케쥴들은 따로 알림이 울리도록 설정해 놓기도 했습니다. 잘못하면 패널티를 물어야 할 수도 있는 중요한 것이지요. 이렇게 수많은 일정들을 저의 시간표 안에 넣어놓고 하나둘씩 시간에 맞춰 해결해 나갑니다. 그런데 살아가다 보면 모든 것이 시간표대로만 되지 않는다는 생각을 해보게 됩니다. 미국에서 살아가다보면 가장 답답한 것이 미국 사람들이 일하는 시간이 굉장히 느리다는 것입니다. 일을 하는지 마는지 답답할 때가 하루 이틀이 아닙니다. 어느 분께서는 소셜 오피스를 갔는데 한국 같으면 3, 4명은 처리했을 시간에 한사람 겨우 처리하더라는 이야기를 하시는 걸 들었습니다. 그런데 사실 미국 사람들이 일을 못해서 그러는 것이라기보다 제대로 하느라고 그런다는 생각도 듭니다. 중요한 것은 국가마다 나라마다 시간차가 존재한다는 것입니다. 인도 사람들에게는 시간을 정하는 것이 의미가 없다고 합니다. 기차를 탈 일이 있어 도착 예정 시간에 역에 나가도 한, 두시간은 커녕 하루 지나서 기차가 오는 때도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루 지나서 기차가 와도 누구 하나 컴플레인 하는 사람이 없다고 합니다. 그런데 한국 사람이 이런 상황에 놓였다면 어떻게 했을까요? 모든 사람이 다 그러지는 않겠지만 아마 난리가 날 것입니다. 시간에 대한 관점이 이렇게도 다른데 하물며 주님의 시간과 나의 시간은 어떨까요? 우리가 시간을 정해놓고 반드시 그 시간까지는 일이 되어야 한다고 정해 놓아도 그것은 어디까지나 나의 시간표에 적어놓은 일정입니다. 주님의 시간표에서는 다를 수 있다라는 말이지요. 베다니에 사는 나사로가 병이 들어서 예수님께 도움을 요청했습니다. 그런데 어찌 된 일인지 예수님은 계시던 곳에서 이틀을 더 계시다가 나사로가 있는 곳으로 가셨습니다. 그러다가 소위 골든타임을 놓쳐 버렸습니다. 나사로가 죽어버린 것이죠. 그런데 예수님의 반응이 더 가관입니다. “내가 거기에 있지 않은 것으로 내가 기뻐한다”고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도움의 손길을 간절히 뻗은 사람에게 그 손을 내팽개 친 것도 모자라 내가 도와주지 않은 것은 잘한 일이라고 자화자찬까지 했습니다. 이런 상황이 여러분의 상황이라면 예수님 믿을 수 있겠습니까? 손절해야 하는 것 아닙니까? 그런데 예수님이 뭐라고 하십니까? 너희로 믿게 하기 위해서 지체한다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의 영광이 드러나게 하시기 위해 그렇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나사로가 병들었을 때 예수님이 고쳐주셨다면 사람들은 의사도 하는 일인데 뭐가 그렇게 대수냐고 했을 것입니다. 죽은 이후에 주님이 찾아가셔서 살려주실 때 생명의 주인이신 주님을 사람들은 믿을 수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우리 시간표에서는 지금 당장 이루어져야 하는 일도 주님의 시간표에서는 아직 아니라고 적혀 있을지 모릅니다. 나보다 나를 더 잘 아시는 주님께서 정해놓으신 시간이 가장 완벽한 시간입니다. 주님은 가장 완벽한 때를 위해 지금도 일하고 계십니다. 그 주님께 여러분의 삶을 온전히 맡겨 보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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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름다운교회 Feb 02.2025 한국학교는 우리의 사명입니다
    요즘 한국학교가 매주 토요일 오전에 진행 중에 있습니다. 어느 날은 8살짜리 남자아이가 제게 다가오더니 이야기했습니다. “목사님, 저는 이렇게 한국학교에 사람이 많아질지 몰랐어요. 원래는 조금 밖에 없었는데. 지금은 진짜 학교 같아요.” 그래서 제가 “한국학교에 사람이 많으니까 좋아?” 라고 물었더니 “너무 좋다”고 그 아이가 대답했습니다. 사실 저도 생각지 못한 일이었습니다. 이렇게도 많은 부모님들과 아이들이 한국어를 배우고, 한국 문화와 역사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있는지 미처 생각지 못했던 것입니다. 처음 이 일을 계획하고 시작했을 때 우리 교회 아이들만 오더라도 좋겠다는 생각으로 시작했습니다. 이것이 어떤 의미를 가지고, 어떤 영향력을 가질 것인지 사실 분명하지 않았던 것이지요. 어떤 면에서는 제가 제일 믿음이 부족했던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이번 학기를 시작하면서 교감 선생님께서 하시는 말씀이 아이들이 지금 등록한 숫자보다 더 올 거라 예상하셨다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저보다 믿음이 더 크셨던 것이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이 일을 시작하셨고, 이 일을 진행해 가시고, 이 일을 통해 하시고자 하는 일들이 있음이 분명합니다. 제가 LA에 있을 때 한국학교를 맡아서 진행했던 적이 있습니다. LA에서는 이만큼 한국어 교육에 대한 열기를 느낄 수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한국어를 배울 수 있는 환경이 곳곳에 많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심지어 공립학교에서조차 이중언어 교육 시스템에 잘 되어 있어서 한국어를 매일 배울 수 있었습니다. 오히려 한국에서보다 더 한국어를 잘 배울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할 정도였습니다. 그래서 일까요? 한국어를 배운다는 것에 대한 갈급함이 많지는 않았습니다. 그런데 라스베가스에서 한국학교를 진행하면서 느낀 것은 이곳이야말로 한국어 교육이 절실히 필요한 곳이라는 것입니다. 이러한 마음이 통했는지 여기저기서 이 일에 동참하고자 하는 자원하는 마음을 가진 선생님들이 나타났습니다. 그리고 매주 토요일 아침 일찍 아이들을 준비시켜 한국학교를 보내는 부모님의 수고와 열정이 더해져 한국학교가 한주한주 더욱 풍성해져 감을 느끼게 됩니다. 손수 만든 점심식사를 아이들에게 먹일 수 있는 헌신된 주방의 자원봉사자들의 섬김은 매주 부모님들의 감탄을 지어내기도 합니다. 이 일을 해 나가면서 한국학교를 시작하게 하신 의미들을 하나하나 발견해 가고 있습니다. 언어의 전승이 없으면 신앙도 전승되기 힘들다는 것은 여러 연구들에서 밝혀졌습니다. 현재 일본어 또는 중국어를 사용하는 이민교회들이 점점 축소되고 있다고 합니다. 이것은 한인이민교회가 존속하려면 한국어 교육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것을 반증합니다. 뿐만 아니라 라스베가스 교회들의 연합이 한국학교를 통해 일어날 수도 있을 것이라는 기대와 소망을 가지게 하셨습니다. 이 지역의 교회들이 아름다운 연합을 이룰 수 있는 통로로 아름다운교회가 사용될 수 있다면 얼마나 기쁜 일일까요? 하나님께서는 마음에 소원을 두고 행하신다고 하셨는데 이렇게 부족한 믿음을 가진 사람에게 소원을 주셨고, 그 일들을 행하시는 분도 하나님이심을 믿고 우리가 이 일들을 함께 해 나갑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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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름다운교회 Jan 26.2025 함께 일할 수 있는 교회
    지난 주부터 제직 성장 세미나가 진행 중에 있습니다. 별안간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교회를 열심히 섬기고 봉사하다가 갑자기 실족하는 경우들을 많이 보아왔는데요, 왜 그럴까라는 질문을 던지면서 우리가 열심히 교회를 섬기고, 주님을 섬기다가 왜 갑자기 실망을 하게 되고, 낙심에 빠지게 될까를 생각해 보았습니다. 이런 생각을 하게 된 연유에는 요즘 새벽시간마다 요한복음을 살펴보고 있기 때문입니다. 유대인들이 참 재미있는 민족입니다. 하나님께 정말 많이 사랑을 받고, 또 하나님께 매도 많이 맞았죠. 그런데 당근도, 채찍도 모두 하나님께 사랑받고 있다는 증거였습니다. 그런데 그토록 특별한 존재로 여김을 받던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래서 누구보다 하나님의 뜻이라면 따라야 할 그들이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참 이상한 일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결국 이스라엘 백성들은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는데 앞장을 서면서 하나님의 뜻과는 정반대의 길을 걷게 됩니다. 그들은 왜 그랬을까요? 그 이유는 시기와 질투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들은 그토록 지금까지 사랑을 받아왔지만 그것은 자신들이 무언가를 잘했기 때문에 받은 것이라 착각했습니다. 그러다보니 하나님의 사랑이 느껴지지 않을 때면 하나님께 더 잘 보이려고 애를 썼습니다. 사랑에 목이 말랐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그렇게 하지 않아도 여전히 그들을 사랑하시고, 처음부터 끝까지 그들과 함께 하기를 원하셨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하나님과 그저 동행하면 되는 것을 오히려 사랑받기 위해 잘 해보려다가 도리어 그들에게 독이 되는 일들을 저지르게 됩니다. 시편 69:9, “주의 전을 사모하는 열심이 나를 삼키리라”는 말씀이 실제로 유대인들을 통해 일어나게 된 것이죠. 이 모든 것의 시작은 시기와 질투였습니다. 그리고 시기와 질투는 내가 충분한 사랑을 받고 있지 못한다는 생각과 감정에서 시작되었습니다. 그러니 내가 받을 사랑도 충분하지 않은데 그 남은 사랑마저도 누군가가 가져간다는 것은 끔찍한 일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우리는 어떨까요? 교회를 열심히 섬기다가도 내가 하던 일을 누군가가 나타나 더 잘 해내면 이제 내 자리는 없나보다 하고 조용히 그 자리를 떠나던지, 교회를 떠나던지 합니다. 그 이면에는 이제 내가 이걸로는 더 이상 사랑과 인정을 받지 못하겠구나 하는 마음이 슬며시 들어오게 된 것이죠. 이제 내 자리는 없나보다 생각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한가지 진리를 꼭 잊지 말아야 합니다. 그것은 하나님은 사랑이시라는 것입니다. 이 사랑은 놀랍습니다. 각 사람에게 충분하고도 남는 그런 사랑이기 때문입니다. 뭘 해서가 아니라 그냥 사랑하십니다. 자녀여서 사랑하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교회를 섬길 때는 내 열심이 먼저가 아니라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가 먼저여야 합니다. 그 사랑과 은혜가 너무나 감사하고 감격스러워서 섬김과 봉사가 저절로 흘러나와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나보다 더 잘 하는 사람이 나타나도 함께 일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일은 더욱 풍성해지기 마련입니다. 작은 일이라도 나누어서 함께 일할 수 있는 교회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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