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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회칼럼(박대우목사)

April 07, 2024 . 아름다운교회 경건의 능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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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아름다운교회
댓글 0건 조회 64회 작성일 24-04-10 14: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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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알고 있는 파라과이 양선교사님이 있습니다. 어려서 파라과이에 이민을 가서 살던 분인데 신학교를 제가 다녔던 총신에 유학을 오게 되어 같은 동기로 공부를 했습니다. 참으로 열정적으로 선교를 하시는 목사님인데, 얼마 전에 한국에 나와서 선교 보고와 방송사에서 인터뷰를 하는 중에 그런 고백을 하셨습니다. 팬데믹을 맞아 당신의 사역도 위기를 맞았답니다. 정부에서 실내 집회를 폐쇄하고 모든 선교의 길들이 막혔을 때에 선교의 길도 막혀서 내심 고민을 하다가 하나님께서 기도중에 이런 마음을 주셨다고 합니다. 막혔다고 가만히 주저할 수 없지 않느냐? 예배당에서 모일 수 없다면, 사람을 모아서 군중과 거리로 나가서 복음을 전해야 하지 않느냐는 마음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리스도 정병훈련을 통해서 사람을 양성하고, 그 사람들로 하여금 빈민촌, 거리, 사람이 있는 곳에 가서 주일학교 운동을 일으키는 것이었는데, 이것이 주효해서 지금 파라과이에 복음의 새로운 운동이 일게 되었다는 고백입니다. 그러면서 선교는 예배당이 중심이 아니라 사람이 중심이 되어야 한다.’는 깨달음을 이야기 했습니다. 팬데믹이 위기였는데 모이는 예배당 중심에서 흩어져 사람을 중심으로 하는 선교전략이 뉴노멀시대의 선교라고 외쳤습니다.

이러한 깨달음은 새로운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이미 존재하고 있는 선교나 교회의 본질을 재 부각하고 초심으로 돌아가는 것이 이 시대의 신앙의 방향임을 재확인 시켜주는 것에는 의미가 있다고 보여집니다. 그동안 한국교회와 우리 자신의 목회가 모이는 교회로 집중한 것이 사실입니다. 수백, 수천, 수만의 성도가 모이는 것에 환호하고 그것이 부러움의 대상이 되었던 것도 사실입니다. 그런데 지금도 가슴을 치며 아파하는 것은 과연 우리에게 그러한 성장보다는 얼마나 우리에게 성숙함을 이루어 그리스도의 온전한 분량에까지 자랐느냐입니다. 아무리 믿음이 좋다고 하고, 헌신적이라고 하면서도 한 순간에 쌓았던 모든 것들을 쏟아버리고 육적인 그리스도인의 모습으로 전락하는 일이 한 두 번의 일이었을까요? 자기 욕심과 자기 감정앞에 서스럼없이 무너지는 우리의 미숙한 모습은 교회의 자랑이 아니라 아픔이 되기도 하였습니다. 그러고 보니, 우리는 경건의 모양을 쌓기에 얼마나 많은 열을 올렸는지 모릅니다. 어려서 존경하는 모교회 장로님이 계셨습니다. 산부인과 의사였던 분인데 얼마나 신앙이 좋고 열심을 내셨던 분인지 모릅니다. 그 분이 맹장수술을 하는데, 예수님의 고난을 경험해보고 싶다고 마취도 하지 않고 생살을 째고 수술을 하셨던 유명한 분이셨습니다. 그런데 세월이 지나고 그 헌신과 열심이 무너지는 것을 볼 때에 참으로 가슴아프게 지켜본 기억이 있습니다. 무엇을 위한 열심이었을까, 무엇을 위한 헌신이었을까, 가슴아프게 지켜보던 일이 기억이 납니다. 모이는 숫자에 치중할 것이 아니라 이제는 작은 숫자여도 한 사람, 한 사람이 말씀으로 양육을 받고, 성령의 능력아래서 개개인이 말씀앞에, 성령앞에 내 개인의 욕심과 자랑을 내려놓고 순종하는 경건의 능력이 필요할 때입니다. 그것은 저절로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순종하는 훈련, 말씀앞에 부딪혀 내가 깨지는 훈련을 지속해야 겨우 다듬어질 수 있습니다. 경건의 모양이 아닌 능력을 길러야 할 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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