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pril 08, 2018 . 아름다운교회 화려한 말보다 서툰 몸짓의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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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주 큐티의 본문 중에 ‘지렁이, 버러지 같은 야곱아’(사41:14)라는 말이 있습니다. 청년 시절에 이 말씀을 접하고 참으로 공감을 했던 본문인지라 반가운 마음으로 말씀을 접했습니다. 저는 이 말이 참 좋습니다. 인간의 전적인 부패와 타락을 절감(切感)했기 때문입니다. 어느 선한 한 구석이 없는 내가 ‘은혜’로 구원받은 것을 깨달은 이후에 그렇게 나를 깨닫게 하는 단어가 없었습니다. 내 안의 모습을 봐도 그러했습니다. 그저 깨끗한 척, 아니 깨끗하고 싶은 마음으로 살았고, 그때마다 늘 실패했기 때문입니다. 내 안에 있는 죄성(sinful nature)과 나오는 것마다 온갖 더러운 마음의 찌꺼기를 포장할 뿐, 주님의 은혜 없이는 안 되는 나를 보면 이 말, ‘버러지 같은 야곱아’라고 부르는 것도 그저 감사할 따름입니다. 그분은 우리가 누구인지를 아십니다.
내가 좀 더 거룩한 말을 하고, 화려한 미사여구를 동원하여 설교를 하고, 찬양인도를 하고, 교사를 하고, 리더를 하고 있을지라도 내 안의 실제의 모습은 그렇지 않다는 것은 너무나 잘 알고 있으면서도 간혹 우리는 스스로 위안을 받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말에 있지 않고 능력에 있습니다(고전4:20). 내 안에 온갖 악을 가지고, 변화하지도 않은 채, 그저 앞에서 온갖 좋은 말을 쏟다낸다고 거룩해지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더 역겨울 뿐입니다. 오래 전에 어느 집회에 갔는데 강사님이 무슨 사정이 있으셨는지 예배시간 30분을 넘겨서야 왔습니다. 그때까지 예배도 못 드리고 기다리고 있는데, 이 분이 그날 가지고 전한 본문 말씀은 ‘게으른 자여, 개미에게 가서 배우라’는 잠언서의 말씀이었습니다. 그분은 온 힘을 다하여 전했지만, 그 예배시간 내내, 가슴이 답답해 오는 것은 어쩔 수 없었습니다. 바로 그와 같은 모습이 우리들이 아닐까요? 앞에서는 세상에서 그렇게 좋은 신앙인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런데 뒤에서 보면, 앞에서의 모습과 전혀 다른 모습으로 인해 가슴이 아플 때가 한 두 번이 아닙니다. 우리는 사람 앞에서 무엇인가를 보이려고 하는데 참 많은 재주가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은밀한 중에 보시는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고, 그 분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는 사람이 의외로 많다는 것을 보게 됩니다. 설교자도, 앞에서 인도하는 리더들도 적어도 자기가 말한 것들에 대해서 책임감을 가지고 살아야합니다. 우리는 완벽하지 못합니다. 구멍도 보이고, 실수도 하고, 실망스러운 면도 없을 수 없습니다. 그렇지만 그것을 극복하려는 몸부림을 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그것은 값싼 경건에 불과합니다. 죄를 통한이 여기지 않고 죄를 용서받을 수 없습니다. 비록 서툰 몸짓이지만 고치고, 삶의 책임감을 가지고 한 걸음씩 나가지 않으면서 천연덕스럽게 화려한 말로 포장하는 것은 하나님 앞에서 큰 죄를 범하는 것입니다. 이런 사람들에게 나타나는 주된 현상은 하나님의 눈보다는 사람의 눈을 의식한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바리새인입니다. 세대가 갈수록 말만 화려한 사람들이 많이 보입니다. 주님 앞에 어느 누구도 자신 있게 설 수 없지만, 적어도 우리는 우리의 연약함을 가지고 몸부림치면서 회개하고, 진지하게 삶으로 신앙을 살아내려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마음은 원이로되 육이 약하도다’는 예수님의 말씀만 써먹지 말고, 실패도 하지만, 서툰 몸짓일지라도 겸손히 회개하고 나가야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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