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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회칼럼(박대우목사)

March 25, 2018 . 아름다운교회 쿼바디스 도미네(Quo Vadis Domi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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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아름다운교회
댓글 0건 조회 3,480회 작성일 21-02-23 15: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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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창시절에 감명깊게 본 기독교 영화는 ‘궈바디스 도미네?’ (Quo Vadis, Domine? 주여, 어디로 가시나이까?)였습니다. 수십년이 지난 지금도 몇 장면이 기억에 남기도 합니다. 이 작품은 1896년에 노벨 문학상을 받은 폴란드 작가에 의해서 씌여진 소설을 바탕으로 여러차례 remake되면서 기독교인들의 사랑을 받아온 영화입니다. 그 속에서 베드로는 네로의 핍박을 피해서 로마로부터 빠져 나오는 길목에서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납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을 붙잡고 물었습니다. ‘주여, 어디 가시나요?’ 주님은 베드로에게 ‘네가 십자가를 지지 않기 위해 도망가는 로마로 다시 한 번 십자가를 지러간다’고 하십니다. 베드로는 결국 로마로 돌아가 순교합니다.

기독교는 행복의 종교일까요, 불행의 종교일까요? 축복의 종교일까요 고난의 종교일까요? 두 가지 다 어떤 의미에서는 다 맞는 이야기입니다. 신앙생활을 처음 시작하는 분들이 늘 고민하는 것들이 있습니다. ‘예수를 믿는다는 것이 참 부자유스럽고, 고통스러운 것이다’는 말입니다. 인간의 욕구는 자기가 믿는 종교를 통하여 해탈이나 행복 그리고 자아실현을 목적으로 삼고자 합니다. 그래서 종교가 우리 인생을 행복해준다고 믿는 것입니다. 바울 사도는 그리스 아테네를 방문하였을 때에 그 사람들을 향하여 이렇게 외쳤습니다. “여러분들은 참으로 종교성이

많습니다” (행17:22). 이 말은 어찌 그리스 사람들 뿐이겠습니까? 우리 모든 인간의 저 심성에는 종교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우리를 흙으로 만드셨지만 그 안에 ‘영’(spirit)을 불어 넣으셨기 때문이지요. 하지만 그러한 종교심을 가지고 신앙생활을 하다가는 기독교의 본질을 이해하지 못하고 변질되는 것은 시간문제입니다. 우리가 믿는 세계는 이 세상에서 행복하게 살기 위함이 아닙니다. 이 땅에서 잘 먹고 잘 살고, 고민을 해결하고, 행복하게 살기 위함이 아닙니다. 참된 행복은 소유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관계’에서 나오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늘 베드로와 같습니다. 어려운 짐은 피하고 싶습니다. 시간이 들고, 돈들고, 노력을 필요로 하는 것은 되도록 하고 싶어 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세상의 법칙도 노력 없이, 피땀 흘리지 않고 성공을 보장하지 않는 것처럼, 은혜로(공짜로), 아무 댓가도 없이 구원을 받았지만, 구원받은 자로서 이 땅에서 산다는 것은 그리 녹녹하지 않습니다. 말씀에 합당하게 살기 위하여 고난을 받을 수밖에 없습니다(빌1:29). 그런데 우리는 그 고난을 피하려고 합니다. 베드로처럼 핍박이 있는 로마는 도망가고 싶습니다. 우리가 십자가를 지지 않으려 하면 주님은 다시 우리 대신 십자가를 지십니다. 우리가 피하면 주님은 다시 들어가십니다. 말씀대로 신앙생활한다는 것은 어쩌면 고통스러운 일입니다. 내면의 육의 자유를 억압해야 하는 일이 빈번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주님께 매임은 또 다른 행복입니다. 세상에 수많은 남자와 여자가 있어도 한 사람에게 종속된다는 것이 말할 수 없는 기쁨이 있기에 결혼을 택하는 것과 같을 것입니다. 주님께 속한다는 것은 자유를 억압당하는 것이 아니라, 참된 행복을 누리는 것입니다. ‘궈바디스, 도미네?’ 주여 어디로 가시나이까? 다시 한번 그 영화를 보고 싶습니다. 순교시대의 사랑은 이렇게 목숨을 주고 받은 사랑이었습니다. 내게 그 사랑이 있는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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