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y 20, 2018 . 아름다운교회 위로 아닌 위로
페이지 정보

본문
지난 주에 WAVE Conference가 은혜 중에 마쳤습니다. 지역 사회 청년들을 향한 각 교회의 헌신과 사랑이 있었고, 하나님께서는 아직도 베가스의 청년들과 기도하는 성도들을 잊지 않으시고 계시며, 바알에게 무릎 꿇지 않은 7천명을 남겨두셨다는 말을 실감할 만큼 그 진지함은 정말 감사한 일이라 아니할 수 없었습니다. 특별히 자기 비용을 들여서 자비량으로 Seattle에서, Los Angeles에서 집회를 섬기러 오신 모든 분들의 눈물 어린 섬김은 우리의 가슴에 깊은 감명을 주었습니다. 하루 강의를 위해서 준비하는 시간은 차치하고라도, 당일치기로 LA를 오가기도 하고, 3박4일을 이곳에 붙잡혀서 보상도 없는 헌신을 위해 머물며 기도하는 찬양팀과 휴가까지 내고 방송을 위해 따라 나온 집사님 등에게 보답하는 것은 아무 것도 없었습니다. 그저 그들은 자비량으로 휴가까지 내고 이곳에 단지 섬기기 위하여 오신 것입니다. 강사진들도 그렇습니다. 정말 시간 많은 한가한 강사들이 아닙니다. 없는 시간 쪼개서 이곳에 와서 말씀을 전하는데, 그들은 휴가까지 반납하고 가족들 데리고 선교지를 다닐 열정이 있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에게서 복음을 향한 ‘passion’을 보는 것은 큰 도전이었습니다.
반면에 이런 섬김의 열정에도 불구하고 지역 교회와 청년들의 참여열정은 너무나 민망스러웠습니다. 가끔은 설교자요 목회자로서 이런 생각이 들 때가 있습니다. ‘왜 사람들은 모이지 않을까? 말씀을 듣고 기도하는 일에, 헌신하고 봉사하는 일에 왜 우리는 이렇게 힘들어할까? 내가 전한 말씀이 너무나 시시해서 그럴까? 내가 부족한 것이 무엇일까?’ 그것이 나의 능력부족에 있는 것은 아닐까 의심도 해 보았습니다. 그런데 이번에 한 가지 나 스스로에게 위로(?)가 된 것이 있었습니다. 아, 내가 부족해서 그런 것이 아니구나, 뭐 이런 것 말이지요. 은혜가 넘치는 현장에도, 유능한 강사진에도 불구하고 모이지 않는 것을 보니 나의 무능력만은 아니구나~! 위안(?)이 되었습니다. 이렇게 모이지 않는 것은 우리 교회만이 아니라 모두의 문제라는 것으로 스스로 위로(?)를 해 보았습니다. 왜 이리 모이기를 힘들어 할까? 과거에는 이웃 교회에 집회가 있으면 일부러라도 찾아 다녔습니다. 그런데 요즘은 우리 교회 집회는 물론이고, 다른 교회 집회는 더더욱 참석하지 않습니다. 왜 그럴까요? 관심의 부족일 수도 있겠고, 인터넷이 발달해서 구태여 그런 집회가 아니더라도 얼마든지 은혜의 공급을 충분히 받기 때문일 수도 있겠고, 내 방식이 아니면 다른 방식으로 신앙 생활하는 것을 거부하는 것일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제 판단으로는 가장 큰 이유가 바로 ‘영적 무관심’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영적으로 성장하려고 하는 열정이 없는 것입니다. 그냥 교회 다니는 것 하나만으로도 바쁜데 이런 저런 것까지 챙길 여유가 없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실제로 바쁘기도 하겠지만 가장 큰 원인은 그 안에서 영적 성장에 대한 관심이 없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나는 이대로가 좋아, 이렇게 하는 것만으로도 대단해! 라고 생각하는 영적 게으름이나 교만도 그런 이유가 아닐까 싶습니다. 주님은 우리를 제자가 되라고 부르셨습니다. 제자는 자기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르는 사람입니다. 그저 내 행복을 위해 예수를 두는 자가 아니라 예수님을 따라가는 자입니다. 예수를 따르고 있는지 생각해야 합니다.
- 이전글기발한 아이디어? 21.02.24
- 다음글형설(螢雪)의 공(功) 21.02.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