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uly 07, 2024 . 아름다운교회 이웃사랑 실천하는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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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아지들이 자기들이 살던 집을 탈출했습니다. 지난 주에 3번씩이나 야밤도주를 했던 교회의 개들이 그나마 안전하게 집으로 복귀하게 된 것은 전적으로 사랑이 풍성한 이웃들의 도움 때문이었습니다. 수요예배를 마치고 돌아온 시간이 이미 늦었는데, ‘너네 개들이 나와서 내가 지금 보호하고 있다’는 전화를 받고 조치를 하고 또 얼마 있지않아 개들이 나와서 데리고 있다는 연락을 다시 받아 이상한 생각이 들어서 나가지 않을수 없었습니다. 실수로 나갈 수도 있는데, 곧 바로 이어서 다시 나갔다는 것은 어딘가에 ‘구멍’이 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 구멍을 메우지 않으면 계속 나갈 것이기에 늦은 시간임에도 나가서 그 ‘구멍’을 찾아서 막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개를 데리고 있다는 이웃에 사는 분을 찾아가 감사의 인사를 드리고 보니, 한 마리만 있고 다른 한 마리는 행방을 모른 상태였습니다. 이 강아지 둘은 한번도 따로 돌아다닌 적이 없습니다. 늘 같이 있는데 이번에는 한 마리만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차를 몰고 주변을 탐색을 했습니다. 그런데 그 이웃에게 전화가 왔습니다. 지금 네가 차를 타고 개를 찾으러 다니냐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했더니, 자기도 차를 가지고 개를 찾아보겠다고 합니다. 이미 그때가 밤 12시가 넘은 시간입니다. 고맙지만 늦은 시간이니 괜찮다고 들어가라고 해도 막무가내로 차를 몰고 나와서 함께 찾아보자고 하는 것입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다른 분들이 개를 찾아서 교회로 데리고 와서 상황이 안전하게 해결되었습니다. 우리 집 강아지들은 행운아들입니다. 나갈 때마다 지나가던 이웃들이 붙잡아 교회로 되돌아왔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번에 만난 이웃은 좀 특별한 것 같습니다. ‘자기는 유대인이지만, 성경에 쓰여진대로 이웃을 돕는 것이 전통이고 말씀의 가르침이다’고 하면서 내가 자기의 이웃이기에 아무 때나 돕는 것이 자신의 의무라고 하면서 앞으로도 도우며 살자고 문자를 주고 받았습니다.
아무 관계도 없고 어떤 안면식도 없는데도 이웃이라는 이유로 자신의 편함을 내 던지고 말씀을 실천하려고 했던 유대인 이웃을 보면서 참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 성경에 강도만난 사마리아인의 비유를 통해서 이미 우리에게 가르쳐 주셨지만, 정작 성경을 통해 예수님의 구주되심을 인정하는 내가, 만일 똑같은 상황을 내가 만났다면 나는 과연 그렇게 늦은 시간에 발벗고 이웃의 애탐에 동참할 수 있을 것인지 되물어 볼 수 밖에 없었습니다. 이 유대인 이웃이 몰고 나온 차는 고급차량이었습니다. 그 차에 개를 찾으면 싣고 오겠다고 한 것도 가슴을 뭉클하게 했습니다. 차 시트가 더러워지는 것도 마다하지 않을 결심이었던 것이지요. 언젠가 벤츠를 타던 교인이 있었는데, 어느날 차량봉사를 나갔다가 아이가 아이스크림을 시트에 묻혔다고 불평하면서 다시는 라이드 봉사 하지 않겠다고 하는 모습이 overlap되면서 그 유대인 이웃의 헌신이 다시 예수님의 말씀처럼 묻어나왔습니다. 이 이웃은 성경과 전통을 몸으로 실천하는 사람이었던 것이지요.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어디까지 지키고 있는 것일까 다시 생각해 보게 하는 날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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